한국야구, 'AG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OSEN 기자
발행 2006.12.02 20: 13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한국 프로야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경기였다. 치욕적인 망신을 당한 것보다는 한국야구의 수준이 과연 ‘이것밖에 안되는가’하는 회의를 품게 만든 한 판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스타들로 구성된 아시안게임 한국대표팀이 아마추어인 사회인과 대학선수들로 팀을 이룬 일본 대표팀에 2일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2차전서 홈런을 3방씩이나 허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졸전을 치른 끝에 10-7로 패배했다. 어떻게 이런 망신을 당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이대호의 스리런 홈런 등으로 뽑은 4-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9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믿어지지 않는 패배를 당했다. ▲투지도 없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선수들의 약한 정신력이었다. 지난달 30일 사실상 결승전이었던 대만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선수들은 모두가 힘이 없었다. 금메달에서 멀어졌다고는 하지만 상대가 숙적인 일본 대표팀이고 아마추어라는 점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있어야 했다. 특히 일본에게 허무하게 역전을 허용한 뒤에는 ‘망신은 당할 수 없다’는 강한 투쟁심을 보여줬어야 하지만 무기력한 모습이어서 실망을 안겨줬다. 선발 류현진(한화)은 낮은 마운드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듯 4-0으로 앞선 3회말 수비서 잇따라 볼넷을 남발하며 무너졌다. 심판의 볼판정에 예민하게 반응, 타자일순을 허용하며 3점 홈런과 집중타를 맞고 5실점했다. 마무리 투수 오승환(삼성)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변화구 컨트롤에 약점을 보인 오승환은 8회에도 볼넷 3개를 내주며 1사 만루의 위기를 자초하더니 결국 9회 볼넷과 홈런포에 무릎을 꿇었다. ▲투수 교체 타이밍도 없었다 대만전에 이어 이번에도 ‘믿는 투수’에 발등을 찍혔다. 대만전서는 구위가 떨어진 에이스 손민한(롯데)을 5회까지 끌고 갔다가 홈런포를 허용하더니 일본전서는 컨트롤이 흔들리며 무너지고 있는 류현진을 끌어내리지 않았다. 불펜 준비가 안된 것도 있었겠지만 시간을 벌며 불펜 투수를 빨리 구원등판시켜야 했다. 류현진은 이미 등판 전부터 구위가 시즌 때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이 돼 언제든지 구원투수가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너무 믿고 오래간 것도 좋지 않았다. 7회 2사 후부터 등판한 오승환은 8회부터 볼넷을 연발하며 힘든 모습이 역력했다. ‘아시아 세이브왕’인 오승환이 가장 믿을 만한 투수이기는 하지만 9회까지 가기에는 무리였다. 투구수도 50개 가까이 됐기에 다른 불펜 투수들을 대기시켜야했다. 결국은 최고의 투수를 내고도 졌다는 합리화를 위한 방편이었다고 해도 벤치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작전도 통하지 않았다 대만전과 판박이였다. 2번의 번트 실패로 선취 득점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2회 선두타자 이진영(SK)의 중월 2루타와 장성호(KIA)의 볼넷으로 만든 무사 1, 2루에서 박재홍(SK)은 초구 보내기 번트 실패에 이어 삼진으로 물러났다. 또 3회에도 선두타자 이용규(KIA)가 상대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한 뒤 다음타자 박진만이 보내기 번트를 댔으나 포수 파울 플라이 아웃으로 실패했다. 4번 타자 이대호의 스리런 홈런이 나와 다행이었지만 아쉬운 대목이었다. 도루는 박진만(1회)과 이진영(3회)이 한 개씩 성공해 대만전보다 나았지만 다른 작전은 없었다. 이번에는 벤치에서 상대가 뻔히 알고 있는 눈에 보이는 작전을 걸기 보다는 선수들에게 맡겨놓은 경우가 많았지만 2번의 번트 실패는 곱씹어야 할 부분이었다. ▲심판운도 없었다 심판 운도 따르지 않았다. 이날 일본전 구심은 대만인이 맡았다. 이 구심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이 일본을 이기면 대만의 금메달 전선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 이 구심은 한국이 자랑하는 투수들인 류현진과 오승환을 결정적인 순간에 울렸다. 첫 번째 제물은 류현진이었다. 4-0으로 앞선 3회말 수비때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잡아 류현진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몇 번씩이나 구심의 볼판정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만스런 모습을 보인 류현진은 결국 볼넷 3개에 3점 홈런 포함해 4안타를 맞고 5실점으로 무너졌다. 두 번째 제물은 오승환이었다. 오승환에게는 8회와 9회 스트라이크성 공을 몇 차례 볼로 판정해 힘들게 만들더니 결국 끝내기 스리런 홈런이 나왔다. 오승환과 포수 조인성(LG)은 수 차례 구심을 쳐다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일본 투수에게는 후하게 판정을 내려 더욱 의심을 사게 했다. 특히 9회초 2사 1, 2루에서 정근우 타석때 바깥쪽 빠진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해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언더핸드 투수 이소우라의 바깥쪽으로 빠진 공 2개를 스트라이크로 판정, 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아무튼 이날 일본전 패배는 한국야구가 여기서 주저앉느냐, 대개혁으로 재도약의 계기로 삼느냐는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 경기였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만 일본 미국을 연파하며 4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자만에 빠졌던 한국야구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자성의 기회를 갖게 한 무대였다. 한국야구계가 하루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재도약의 길을 모색하기를 바란다. sun@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