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에 이어 김정은의 건강악화 소식이 포털 메인을 장식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과로가 원인이다. 촉박한 촬영 일정에 밤새는 건 부지기수며 아파도 방송 때문에 쉴 수가 없다. 어느 연기자는 “촬영 때문에 3일간 잠을 못 잤다. 다 같이 고생하고 있는 상황이라 힘들다고 내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속내를 비추기도 했다. 또 다른 연기자는 “대본이 촬영 하루 전날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빨리 나오는 편”이라며 “연기자에게 드라마는 ‘누가 빨리 외우고 빨리 외운 티를 안 내느냐’ 하는 싸움인 것 같다”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내뱉기도 했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다. 대본이 제때 나오지 않고 연기자들은 대본을 숙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리허설은커녕 대본조차 숙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더러 있다. '늑대'가 그랬다. 또 촬영은 방송시간에 쫓겨 24시간 대기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출연진이나 제작진 모두 끝날 때까지 촬영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대본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어찌됐건 방송시간까지는 촬영을 마쳐야 하는 것이 의무인지라 쉴 틈이 없다. 하루 한 신 정도만 촬영하는 미국이나 일본의 시스템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래서 몇몇 연기자들은 열악한 촬영 환경을 이유로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하기도 한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사전제작 시스템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시청률 때문이다. 말로는 시청률에 혹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시청률에 의해 드라마의 존폐가 결정되는 현실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가 없다. '주몽' '소문난 칠공주' '하늘이시여' 등의 인기드라마들이 연장방송을 결정하고 '101번째 프러포즈' '독신천하'와 같은 드라마들이 조기에 종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시스템은 연장방송이나 조기종영으로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끔 드라마를 요리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품성 있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더 많은 연기자들이 쓰러지고 얼마나 더 많은 사고가 발생해야 시스템 개선을 위한 가시적인 성과나 노력들이 드러날지 알 수가 없다. 과거와 달리 시청자들의 입맛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만으로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주몽’을 보지만 ‘주몽’을 욕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재미는 있지만 비판은 별개’라는 인식에서 재미와 함께 작품성도 추구하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읽혀진다. 완성도 높은 작품은 완성된 대본이 있고 출연진과 제작진이 촬영할 준비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사전제작 같은 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이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근로 환경과도 직결된다. 내년에는 촬영 중 누가 쓰러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 일이 없길 소망해본다. orialdo@osen.co.kr KBS 2TV '황진이' 하지원(왼쪽)와 SBS '연인' 김정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