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남자들이 더 잘 울었다, '화제'
OSEN 기자
발행 2006.12.25 09: 40

눈물의 값어치를 따지는데 남녀를 구별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빈도의 차이에서 오는 인상의 깊이는 다를 수 있다. 평소 남들 웃기느라 잘 울지 않는 남자들이 펑펑 울었다. 그래서 화제가 되고 있다. 12월 23일 밤, 서울 여의도 KBS 별관 공개홀에서 열린 ‘2006 KBS 연예대상’ 시상식은 무엇보다 ‘눈물’로 기억된 행사였다. 남들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남자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번지르르한 웅변보다 더 많은 사연을 이야기 한 눈물이었다.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마빡이’ 정종철은 개그맨들이 느끼는 재기에 대한 불안감을 눈물로 호소했다. 인기 개그맨의 생명이 길어야 6개월이라는 자조 섞인 현실을 돌이키며 스스로도 그 굴레에서 고통을 겪었다는 사연을 눈물로 쏟아냈다. “주변에서 모두 ‘옥동자’ 이후로는 아무 것도 못할 것이라 했다”며 쓰라렸던 마음을 열어 보였다. 소위 ‘떴다’는 개그맨들에게 ‘6개월 천하’는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1분 마다 폭소가 터지지 않으면 채널이 돌아간다는 속설만큼이나 인기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후속타를 터트리지 못하면 미련 없이 잊혀져 버리는 게 개그맨의 숙명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올 한해 너무 많은 것을 얻어서 행복하다. 아내도 얻고, 아이도 얻고, 무엇보다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얻었다”며 울먹이는 정종철의 눈물에는 진실이 가득했다. ‘고음불가’ ‘야야야 브라더스’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수근의 눈물도 폐부를 찌른다. 코미디 부문 우수코너상을 받은 이수근은 한때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개그맨 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위기까지 몰렸다. 다행히 무혐의 처리돼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 사건은 좀처럼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이수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그콘서트’ 무대에 다시 서는 일이었고, 인기 개그맨으로 보란 듯이 성공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수근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뤄냈다. “개그 콘서트 무대에 다시 서게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며 글썽이는 눈물은 보기에도 뜨거웠다. 쇼 오락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상상플러스’의 이휘재도 마찬가지다. ‘상상플러스’는 이휘재의 재발견이 이뤄진 무대이기도 하지만 동료 출연자 정형돈과의 손가락 욕 해프닝은 이휘재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되기도 했다. 공들여 쌓아온 이미지를 한 순간에 날려버릴 위기였다. 이휘재는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시청자들을 상대로 사과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진성성이 인정돼 ‘연예대상’ 쇼 오락부문 최우수상도 받았다. 끝내 눈물을 보인 이휘재의 수상소감도 사과였다. “사건 사고도 많았는데 이런 상을 받다니…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울먹였다. 최고의 영예인 연예대상을 수상한 김제동은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힘들었던 무명시절에 대한 맺힌 한을 눈물로 쏟아냈다. “얼굴도 모르는,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에 좋은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돼 기쁘다”며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하나같이 ‘피에로의 눈물’이다. 세상 모든 슬픔을 다 안고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웃음을 보여야 하는, 기막힌 숙명을 타고난 이들의 속울음이다. 얄궂은 운명이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그들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 날이 바로 쌓였던 감정을 털어낼 수 있는 시상식이고 그래서 그들은 펑펑 울었다. 그 자리만은 남들을 웃기지 않아도 되니까. 100c@osen.co.kr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종철 김제동 이휘재 이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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