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한국영화계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는 '반미'다. 연초 전격적으로 발표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와 맞물려 불똥은 한 미 FTA로 튀었고 그 악감정의 귀결은 미국이었다. 여기에 '우리는 하나'라는 남 북간 민족주의 감성이 더욱 강해지면서 갈 곳을 잃은 영화속 주적 논쟁의 타겟도 미국으로 바뀌는 중이다. 그동안 에둘러 드러냈던 반미 감정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경계선은 '웰컴 투 동막골'과 '태풍', 그 사이에 있다. 2005년 8월 개봉한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인민군 패잔병과 국군 낙오병, 격추된 미군 조종사 등이 순박한 마을 주민들과 어우르져 빚어내는 감동 드라마다. 인민군 장교 리수화(정재영)의 입을 통해 '북한이 먼저 남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군 조종사의 인간미도 살짝 보여주지만 남 북이 하나된 아름다운 동막골을 파괴하려는 건 한 미 연합군이다. 150억여원의 제작비를 들인 곽경택 감독의 '태풍'(12월14일)은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해양 액션 블록버스터. 납북자 출신의 해적 씬(장동건)과 이를 막으려는 한국 해군의 엘리트 장교 강세종(이정재)의 대결 구도가 키포인트다. 기대와 달리 어설픈 진행과 플롯으로 흥행에 실패한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에서 한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악의 축으로 주저없이 미국을 지목했다. 영화 속 '반미'의 하이라이트는 올 여름 한국영화 최다관객 신기록을 세운 '괴물'이다. 386세대인 봉준호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도대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자근 자근 씹어가며 괴물로 만들었다. 우선 주한미군에 의한 포름알데히드 한강 무단방류(맥팔렌드 사건)가 괴물 탄생의 발단이다. 이어 미국 정부가 바이러스 감염을 이유로 한국내 위기를 조장한 뒤 거짓 정보를 숨기려고 독극물 수준의 소독약까지 살포한다는 게 봉 감독 식의 블랙 코미디다. 영화 속 지나친 반미 조장에 대한 여론이 일자, 봉 감독은 '한강변에 괴물이 출현했을 때 시민들을 도운 용감한 미군 병사도 있지 않냐'는 식의 이의 제기를 했다. 또 최근 미국 개봉에 앞서 현지 언론이 '괴물'의 반미 감정 조장을 비난하자 "확실히 말해두는 데 '괴물'은 반미 영화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는 게 오히려 사실에 가깝다"고 인터뷰를 했다. 지난 10월 촬영을 끝낸 '작은 연못'은 반미 감정을 최고로 끌어올릴 내용을 담고 있다. ‘작은 연못’은 제목에 나오는 대로 작은 영화가 아니다.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철교 근처에서 피난 중이던 인근 마을 주민들이 미군들의 오인 사격으로 떼죽음 당했던 비극적이고 민감한 사건을 스크린에 처음으로 옮겨 담는다. 문성근 김뢰하 강신일 박광정 전혜진 이대연 김승욱 최덕문 등의 출연진은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게 없지만 개런티를 투자하는 식으로 참여, 제작비는 1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할리우드는 소련의 붕괴로 한 때 누구를 적으로 삼아야할 지 고민했다. 영화 속 구도에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선 악의 대비고, 공산주의 소련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악의 축으로 오랜 세월 그 구실을 톡톡히 했던 것. 이제는 테러와의 전쟁을 모티브 삼아 아랍권을 겨낭하고 있다. 충무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무엇보다 반공이 우선하던 20세기를 벗어난 뒤로는 마땅히 총대 둘 곳을 못찾다가 거꾸로 미국을 겨냥했다. 상호 관계 속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세계 조류에서 한국영화가 편중된 감정만을 스크린에 주입하는 코드로 일관하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mcgwire@osen.co.kr '웰컴 투 동막골' '태풍' '작은 연못' '괴물'(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영화 스틸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