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2일 도쿄돔.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주니치 드래건스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는 날이다. 대망의 일본시리즈 진출권이 달린 센트럴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속속 관중들이 도쿄돔에 입장하고 있다. 5만 석의 표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요미우리가 5전 3선승제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2연패한 다음 2연승, 마지막 경기에서 리그 우승을 다투게 됐다. 오치아이 주니치 감독이 리그 2연패를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하라 요미우리 감독이 부활에 성공하느냐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이 가운데 요미우리 간판타자 이승엽(31)과 새롭게 주니치맨이 된 이병규(33)의 대결도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선수는 나란히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마지막 일전을 벌이게 됐다. 두 선수의 대결을 보기 위해 한국에서도 50여 명의 보도진이 몰려들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였다.
2006시즌 41홈런 108타점 3할2푼3리를 거둔 이승엽은 2007시즌에도 방망이가 폭발, 50홈런 120타점 타율 3할3푼으로 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과시했다. 연간 7억 엔이 넘는 일본 최고연봉선수 다운 성적표를 받았고 이젠 이승엽을 넘볼 만한 타자는 일본에 없을 만큼 지존의 위치에 우뚝 섰다.
이병규 역시 무서운 한 시즌을 보냈다. 일본 진출 첫 해에 부진했던 선배들과 달리 타율 3할2푼, 최다안타 1위, 팀 내 출루율 1위에 올랐다. 한국 시절 무턱대고 방망이를 내밀었던 습관을 버리고 정교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골라치는 맛을 들이면서 데뷔 첫 해 대박을 날렸다.
홈런도 20개를 날리는 등 클린업트리오에서 확실한 자리를 굳혔다. 폭넓은 수비력을 자랑한 중견수비도 일본수비수 가운데 최고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치아이 감독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주니치의 간판타자로 자리잡았다.
우에하라 고지와 가와카미 겐신의 선발 에이스 맞대결로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이 시작됐다. 치열한 투수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승엽이 먼저 선제공격을 가했다. 4회 2사 1루 두 번째 타석에서 가와카미의 몸쪽 포크볼을 끌어당겨 선제 투런홈런을 날려 도쿄돔을 흥분의 도가니속에 빠뜨렸다.
그러나 주니치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병규가 6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중전안타로 공격의 물꼬를 텄다. 이병규는 곧바로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이어진 이노우에의 우중간 2루타로 홈을 밟아 2-1. 곧바로 대타 다쓰나미의 우전 적시타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기세가 되살아난 주니치는 9회초 이병규의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했다. 2사 2,3루에서 우에하라의 역시 몸쪽 포크볼을 걷어올려 우중간에 떨어지는 2타점 안타를 작렬했다. 순간 주니치의 덕아웃은 환호성으로 뒤집어졌고 요미우리의 덕아웃은 깊은 침묵속에 빠졌다.
센트럴리그 우승을 목전에 앞둔 9회말 요미우리의 마지막 공격이 이어졌다. 주니치 마운드에는 2년 연속 최다세이브를 기록한 좌완 이와세가 버티고 있어 우승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톱타자 와키야가 기습번트를 성공시켜 다시 도쿄돔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2번타자 야노는 치열한 접전 끝에 볼넷을 얻어 무사 1, 2루.
3번타자 니오카는 내야땅볼을 쳤고 겨우 병살을 모면해 1사 1, 3루. 드디어 타석에는 요미우리의 간판타자 이승엽이 들어섰다. 도쿄돔의 요미우리 팬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세와의 대결에서는 8타수 무안타로 이승엽의 절대 열세였다.
자신감에 찬 이와세는 초구부터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던져 이승엽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러나 이승엽도 끈질겼다. 몇 개의 파울볼을 기록하며 볼카운드를 2-2까지 끌고 갔다. 이와세는 8구째 몸쪽으로 직구를 뿌렸지만 약간 한복판으로 흐르는 볼. 이승엽의 방망이가 바람을 갈랐다. ‘딱’ 소리와 함께 타구는 이와세의 머리를 넘어 담장을 향해 쏜살같이 날았다.
순간 주니치의 중견수 이병규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승엽의 타구를 쫓았다. 20m 전력질주했고 도쿄돔 5만 관중들의 눈은 이병규의 움직임과 이승엽의 타구에 쏠렸다. 담장 앞에서 이병규는 타구의 궤적을 계산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몸을 솟구쳤다. 마치 나는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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