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가 기록으로 남는다면 나는 기억에 남을 선수".
'우주인' 신조 쓰요시(은퇴)가 2000년 12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 입단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같은 무렵 시애틀에 입단한 이치로에 비해 야구 실력에서 밀리는 신조는 이렇게 차별화하는 포지셔닝을 취했고 지난해 니혼햄에 44년 만의 우승을 선사하고 은퇴할 때까지 이 말을 실천했다. 그의 치솟는 인기에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과 제1야당 민주당이 앞다퉈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할 정도였다.
시각을 한국으로 돌려보면 '이치로는 많아도 신조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듯하다. 지난해만 봐도 괴물 루키 류현진(한화)이 투수 3관왕을 차지했고 롯데 이대호는 이만수(전 삼성, 현 SK 코치) 이후 22년 만에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삼성 마무리 오승환은 일본의 이와세(주니치)를 넘어 단일 시즌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을 올렸다.
여기다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이란 대형 호재가 불을 지폈음에도 정작 총 관중은 2005년보다도 줄었다고 한다. TV 시청률도 '이승엽(요미우리) 광풍'에 휩쓸려버린 기색이 역력하다. 삼성은 2년 연속 우승을 하고도 홈 관중은 더 줄었다.
한국야구에 신조와 같은 현상을 일으킨 선수를 꼽자면 2001년 이종범(KIA)이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주니치에서 복귀한 이종범은 KIA 구단의 창단과 맞물리면서 후반기부터 복귀했는데 이종범 효과로 광주구장 평균관중은 3405명에서 9928명으로 튀어올랐다.
아울러 프로야구 총관중 역시 경기당 5461명에서 7931명으로 상승했다. 이종범의 '전국구 인기'를 입증하는 대목이었다. 이종범은 당시 주간지 인터뷰에서 '이종범 현상'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처음엔 '이종범이 뭔가를 보여준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요즘 경기장 분위기를 보면 꼭 그것도 아니란 느낌이다. 그저 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애써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남고 싶다".
실제 이종범이 2003년 이승엽(전 삼성)처럼 어마어마한 홈런 기록을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가 "주니치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착잡했다. 정말 은퇴하고 싶었다"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그러니 어찌보면 한국의 야구팬들이 이종범을 일으켜 세웠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위기라는 한국 프로야구의 메시아는 '야구 기계'가 아니라 이종범, 신조처럼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는, 팬을 감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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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이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