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아씨’ 황수정이 마침내 돌아왔다. 지난 2001년 11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우리 곁을 떠난 뒤 5년여만에 SBS TV 금요드라마 ‘소금인형’(박언희 극본, 박경렬 연출)으로 다시 안방 시청자들을 찾는다.
1월 5일 서울 양천구 목동 SBS홀에서 진행된 드라마 제작발표회 현장. 황수정에게 쏠린 뜨거운 관심을 반영해 300여명의 취재진과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취재진의 눈과 귀는 온통 황수정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5년만에 돌아오는 황수정의 복귀의 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황수정은 들떠 있는 취재진에 비해 오히려 차분했다.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끝까지 잃지 않은 채 “5년 동안 보통 사람들처럼 그렇게 잘 지냈다” “시간이 지나가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것” “열심히 하는 일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는 등의 말들만 되풀이 했다. 좀처럼 격정에 휩싸이지 않으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극에서 맡은 차소영 역에 몰두하고 싶고 (시청자들에게) 차소영으로만 다가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뭔가 그럴듯한 ‘복귀 이벤트’를 기대했던 취재진은 실망스러웠을 일이다. ‘뼈를 깎는 고통’ ‘통한의 세월’ ‘다시 태어나는 심정’ 등과 같은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한 마디를 듣고 전하기 위해 귀를 쫑긋거렸지만 끝내 황수정의 입에서는 이런 단어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시간만이 해결할 것”이라는 준비된 대답들만 돌아왔다.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 등으로 연예계를 떠났다가 적정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복귀한 연예인들은 숱하게 많다. 그때마다 복귀 당사자들은 화려한 수사(修辭)로, 내지는 뜨거운 눈물로 시청자들에게,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곤 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어떤 가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형태의 눈물을 흘리든 팬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도 돌아오는 건 욕뿐이다. 경험상 최선의 방법은 좋은 작품을 들고 나와 입과 귀를 막고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리는 것 뿐이다”고 사석에서 밝힌 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이 말이 맞다. 황수정이 5일의 제작발표회장에서 통곡을 한들, 머리를 조아리며 석고대죄를 한들 그 행동만을 보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5년 전의 아픈 기억을 들먹이며 “쇼하지 말라”는 반응들이 돌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복귀하는 연예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픈 기억이라며 애써 외면한 채 시간만 흘러가기를 바라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용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형식이든 쇼이든 사건 당사자의 통렬한 반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황수정이 그녀의 말처럼 5년이라는 세월을 ‘잘 지냈을’ 리는 만무하다. 황수정은 “보통 사람들처럼 잘 지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없다.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고 반성의 시간이었을 게다. 제작발표회를 하는 내내 황수정에 눈가에 고여있던 물기가 그 고통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끝난다는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팬들의 반응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없다손 치더라도 용서를 구할 것은 구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
황수정은 극중의 ‘차소영’으로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차소영은 분명 많은 주부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다. 남편과 가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남편 수술비 마련과 부도난 회사 재건을 위해 차소영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돈 많은 남편의 대학 동창과 동침을 한다) 돌아오는 것은 비관적 슬픔뿐인 인물이 차소영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차소영이지 황수정은 아니다. 본질이 아닌 허상만 용서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은 잘못 적용되면 팬들에 대한 무책임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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