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은 타이밍 싸움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일지라도 언제 개봉했느냐에 따라서 흥행 성적이 대박과 쪽박으로 갈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 경마에서 자주 얘기하는 '마칠기삼'의 법칙이 극장가에도 적용된다. 경주에서 우승하는 데 말의 능력이 7할, 말을 모는 기수의 능력이 3할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영화도 작품 내용과 질이 흥행의 70%, 개봉 시기를 잡는 운이 나머지 30%를 좌지우지 한다고 영화 제작자들은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박물관’과 ‘미녀’의 굿 타이밍
연말연시 극장가의 히어로는 할리우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한국영화 '미녀는 괴로워', 두편이다. 지난달 14일 개봉한 '미녀'는 지난 주말까지 450만명, 21일 막을 올린 '박물관'은 350만명을 가볍게 넘어섰다. 당초 예상을 훨신 뛰어넘는 흥행 기록이다. 두 영화 모두 개봉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박물관'은 방학 시기에 맞췄다. 구태의연한 방식대로 주연 벤 스틸러나 로빈 윌리엄스의 지명도에 기대지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박물관'을 주요 홍보 타겟으로 삼고 초 중생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각 가정에서 방학철 극장 나들이의 선택권은 아이들 입김이 세다. 당초 수입사 20세기 폭스코리아가 300만정도를 예상했던 관객 동원은 500만명 선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미녀'는 경쟁작들의 부진을 절묘하게 파고 든 케이스다. 한 주 뒤에 개봉한 무협 판타지 대작 '중천'이 화려한 CG와 정우성 김태희 등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 스토리의 단조로움으로 초반 기세몰이에 실패한 덕을 봤다.
또 수작으로 꼽히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가 2030 여성들의 강한 지지에도 불구 장르적 한계의 벽을 뚫지 못했고 서기 이범수 현영 주연의 흥행 보증수표라던 '조폭 마누라3'도 식상한 소재와 웃음 코드 탓인지 겨우 체면치레를 하는 중이다.
여기에 신년 첫주 개봉한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과 고소영 주연의 '언니가 간다'마저 4주차 '미녀'에게 밀리고 있어 독주를 허용했다. 무엇보다 '미녀'의 성공은 김아중 주진모의 열연과 흡인력 강한 내러티브, 진짜 가수보다 더 가수같은 김아중의 열창 등 푸짐한 볼거리가 어우러져 맛깔진 작품을 완성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경쟁작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연달아 자빠지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흥행 페이스는 불가능했을 게 분명하다.
타이밍 어긋난 ‘가족의 탄생’ ‘비열한 거리’
실제 지난해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고도 흥행에서 참패하거나 본전치기에 그친 영화는 한 둘이 아니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5월18일)은 '다빈치 코드' '미션 임파서블 3'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열기와 신현준의 '맨발의 기봉이'에 눌리면서 조용히 사라졌다. 유하 감독 조인성 주연의 '비열한 거리'는 모처럼 생생한 조폭 세계를 스크린에 담아냈지만 롱런 고비에서 '괴물' 출현으로 간판을 내리기 시작했다.
거꾸로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는 개봉 시기를 잘 고른 덕분에 300만명 넘게 관객을 모았다. 지난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이 마무리된 7월 13일, 한국형 블록버스터 '괴물'보다 2주일 빠르게라는 틈새를 노려서 성공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해서 '괴물'과 정면으로 부딪쳤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지 궁금하다.
영화 개봉에는 변수가 많다. 만만히 봤던 경쟁작이 무서운 흥행세를 타는가 하면 전혀 의외의 다크 호스 등장으로 피해를 본다. 이처럼 중요한 개봉 시기의 타이밍을 불가사의한 힘에 의존하려는 지, 점술가를 찾는 제작자들이 많은 게 영화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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