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로 희비, 툭하면 조기종영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은 시청률로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의 작품성과 재미, 완성도 등을 시청률의 높낮이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 그 결과 시청률이 높으면 잘 만든 작품, 그렇지 않으면 형편없는 작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낙인찍혀야 했고 시청률 수치가 나오는 아침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물론 출연자들 또한 희비가 엇갈리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밤새워 열심히 공부를 해도 시험 당일 몇 개를 더 맞고 덜 맞느냐에 따라 성적표의 등수가 나뉘었던 것처럼 아무리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으면 찬밥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심지어 조기종영이라는 쓰디쓴 패배의 술잔을 마셔야할 때도 있다.
작품성 떨어져도 시청률 높으면 연장
‘주몽’, ‘소문난 칠공주’, ‘하늘이시여’ 등이 끊임없이 욕을 먹고 작품성에 흠집을 당해도 연장방송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높은 시청률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높지 않은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의 경우 제작진뿐만 아니라 그 주연배우나 MC들 또한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만하기에 그 어깨가 더욱 무겁다. 가뜩이나 연이은 밤샘촬영과 계절마다 변하는 날씨 탓에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하는 판에 시청률까지 낮으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마저 상실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구사시'로 운 김하늘 강지환
1월 4일 종영한 ‘90일 사랑할 시간’은 첫 회 9.0%(TNS미디어코리아)로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이더니 마지막 16회는 4.8%로 절반에 가까운 수치로 떨어진 채 마감을 해야만 했다. ‘피아노’, ‘사랑한다 말해줘’ 등 가슴을 저미는 슬픈 멜로드라마를 탄생시켰던 오종록 PD가 연출을 맡고 ‘멜로 퀸’ 김하늘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배우 강지환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았지만 자극적이고 톡톡 튀는 스타일의 드라마에 익숙해져버린 시청자들의 입맛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보니 지난해 말 주인공 강지환이 언론사에 보낸 편지에는 “너무 아쉽지만 (종영이) 사실 조금 기다려지기도 한다”며 “연기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그놈의 시청률이 뭔지…”라고 낮은 시청률로 인해 마음 고생했던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배우들, '차라리 일찍 끝났으면' 바라기도
또한 ‘하얀거탑’에서 인술을 펼치는 내과의사 최도영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이선균은 이번 작품에서 김명민과 함께 꽤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게 된 것에 대해 “그동안에는 주인공들이 왜 시청률에 부담을 느끼고 연연할까 의아했고 나는 그런 것에 부담이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며 “역할 외에 다른 것들이 부담감으로 다가오는데 그런 생각 안 하고 연기하려고 한다. (시청률을) 인지는 하되 흔들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시청률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낸 바 있다. 다행이도 6일 첫 방송된 '하얀거탑'은 시청자들과 매스컴의 호평을 얻으며 10% 초반대 시청률로 기분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MBC '2006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유재석 역시 지난해 상반기에는 진행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좋지 않자 녹화 후 철야 회의까지 자청하며 프로그램 개선을 위한 논의를 벌이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한 언론의 보도가 나온 적도 있다. 그 결과 하반기에는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처럼 시청률은 배우를 비롯한 출연자들에게 언제나 부담으로 다가오는 족쇄같은 존재이다. 시청률로 인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방송 제작진들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프로그램의 제작을 기피하고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로 안방극장을 공략할 계획만 세우고 있다. 소수의 의견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이 현실이 안타깝다.
hellow0827@osen.co.kr
'90일 사랑할 시간'의 한 장면/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