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예인들만큼 확실한 뉴스메이커로 자리잡은 직종이 있다. 바로 아나운서다. 지성과 단정한 외모를 겸비한 이들은 특유의 쇼맨십과 순발력으로 뉴스와 교양 정보프로를 휩쓸고 있다. 아나운서들이 보도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했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최근 아나운서의 활동 경향을 두 부류로 나누면 보도 전문성을 취하려는 앵커 지망군과 엔터테이너 기질을 발휘해 인기 연예인을 꿈꾸는 스타 후보들이 있다.
전문성을 꿈꾸는 아나운서
MBC '뉴스데스크’의 박혜진 앵커는 얼마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본 것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기자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기자들은 처음 신입사원 때 경찰청 등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시작하듯 나 역시 앵커로 활동하며 그런 욕심이 나더라. 그렇게 하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고 좀 더 열의를 가지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뉴스를 전달하는 전달자의 입장에서 넘어서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 생생한 소식을 전달하고픈 욕심을 드러낸 것이다.
박혜진 앵커의 전임이었던 김주하 아나운서 역시 2004년부터 보도국 사회부로 소속을 옮겨 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또 얼마 전 정세진 아나운서는 KBS ‘뉴스9’에서 하차하고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연수를 결정했다. 아나운서들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메인 뉴스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뜻밖의 결정을 내린 그녀에게 사람들은 “멋있다”, “존경스럽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미래에 더 프로페셔널하고 나은 40대를 보내기 위해 30대인 지금 미국 유학길에 오른 정세진 아나운서의 용단은 후배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귀감이 됐다.
연예인을 꿈꾸는 아나운서
이와 반대로 자신의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아나운서들도 있다. 얼마 전 ‘일요일이 좋다’의 ‘엑스맨’ 코너에서 핫팬츠 차림으로 가수 아이비의 춤을 춰 인터넷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SBS 김주희 아나운서는 지난해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 출전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프리랜서를 선언한 강수정은 각종 오락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활약하는 모습에 끊임없이 아나운서의 정체성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야만 했다.
또한 KBS 아나운서 출신인 임성민은 ‘외과의사 봉달희’, ‘눈사람’,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등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현재는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임성민은 실제로 아나운서가 되기 전 탤런트 시험에 도전하기도 했을 만큼 배우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정현 아나운서 역시 SBS 드라마 ‘부자유친’에 이어 얼마 전 종영한 ‘연인’에서도 연기자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유정현 아나운서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다소 느린 말투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각종 오락프로그램 진행은 물론 게스트로도 출연해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MBC ‘황금어장’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 김성주 아나운서 역시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김성주 아나운서는 2006 독일월드컵 축구 중계에서부터 교양 정보 프로그램 진행은 물론 ‘황금어장’과 같이 코믹한 분장을 하고 남들을 웃겨야하는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하며 맹활약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방송에서 종종 “뉴스가 하고 싶다”며 볼멘소리를 내곤 하는 김 아나운서는 지난해 MBC‘방송연예대상’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며 연예인다운 기질을 인정받았으며 “아나운서가 웃기러 다닐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아나운서 선후배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는 이색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성주 아나운서와 함께 최근 ‘훈남’으로 떠오르고 있는 MBC 신예 오상진 아나운서 역시 오락프로그램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입사 채 1년도 안돼 지난해 방송연예대상에서 쇼 버라이어티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오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최종면접에서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이렇게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엄기영 앵커 "지나치면 바람직하지 않아"
이같은 아나운서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대해 MBC ‘뉴스데스크’의 엄기영 앵커는 “출연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아나운서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뉴스를 진행하면 이상하지 않겠냐”며 “요즘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출연자들을 망가뜨리는 것이 예사이다. 이런 문제로 회사 내부적으로 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톡톡 튀는 사람들이 각광받고 인정받는 시대에 아나운서들에게만 단정한 정장차림에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진지하게 진행만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부족한 연예인들이 오락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아나운서의 적절한 투입이 언어순화에 좀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말을 제대로 전달해야할 의무를 지고 있는 아나운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연예인들처럼 똑같이 웃기고 튀는데만 집중한다면 대중이 바라는 기대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꿈꾸는 아나운서, 연예인을 꿈꾸는 아나운서. 무엇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든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hellow0827@osen.co.kr
왼쪽 시계방향으로 박혜진, 정세진, 강수정, 김주희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