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궁예' 김영철이 전라로 영화를 찍었다. 올 누드도 서러운데 자신이 직접 벗은 게 아니고 납치돼서 홀딱 벗겨진 신세다. 영화 '그놈 목소리'다.
중견배우 김영철은 이 영화에서 베테랑 형사 김욱중으로 출연했다. 현장에서만 잔뼈가 굵은 강력반 형사로 우직하고 저돌적이다. 유괴범에게 어린 아들을 빼앗긴 유명 앵커 부부(설경구, 김남주)를 도와 수사에 총력을 다한다. 그러나 인질범이 요구한 돈을 들고 나가는 앵커 한경배를 추적하다 오히려 범인에게 잡혀 승용차 트렁크에 갇히고 외진 곳에 알몸으로 버려진다.
김영철은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알몸 연기를 사양하지 않았다. 제작진에게 "촬영에 대비해 한창 몸을 만들고 있었는데 예정일보다 앞당겨 촬영하면 어떻게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 그럼에도 중년을 넘어 장년으로 가고 있는 그의 근육질 몸매가 젊은 배우들 못지않더라는 게 현장으로부터의 전언이다.
노련한 연기자답게 지친 스탭들을 위로하고 달래는 유머 감각도 잊지 않았다. 찰영 직전 장난스레 기합을 넣어가며 팔굽혀 펴기를 실시해 웃음 도가니를 만들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씨여서 벗은 몸으로 연기하는 그가 가장 힘들 때였다.
'그놈 목소리'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미제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이 연출을 맡아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유괴범 목소리 역을 맡은 강동원의 차고 싸늘한 음색에 설경구 김남주가 '몸서리가 처질 정도'였다고 후일담을 얘기했다. 아이를 둔 두 사람은 영화 제작 발표회 때 시종일관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처참한 부모 심정에 몰입해 있었다.
영화 제작진은 각종 포스터에 당시 유괴범 몽타쥬를 싣고 공개 수배에 나섰다. '공소 시효는 지났어도 범인이 누군지를 밝히고 싶다'는 게 박 감독의 외침이다. 아니 우리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mcgwire@osen.co.kr
영화사 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