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재직하던 당시 일화 한 토막. 백 감독은 96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각 투수들에게 자신의 목표 승수를 써내게 했다. 목표를 내걸고 캠프에서 열심히 해보자는 이유였다.
당시 삼성 코치였던 서정환 KIA 감독은 "투수들이 써낸 승수를 모두 계산해보니 120승에 이르렀다. 팀당 경기수가 126경기였으니 거의 전승이나 다름없다. 백 감독을 비롯한 삼성 코치들은 그 합계 승수를 보고 한참 웃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해 삼성이 거둔 승수는 54승에 불과했다.
이처럼 스프링캠프에 돌입하는 각 팀 감독들의 가슴은 한참 부풀어온다. 캠프를 앞두고 시즌의 각종 수치들을 놓고 마음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에이스는 15승 아니면 20승. 이렇게 투수들의 승수를 세어 보면 금세 100승이 나온다. 타자는 모두가 3할이요, 홈런타자는 30홈런에 100타점은 기본이다. 신인 투수는 무조건 10승 이상을 할 것 같다.
어차피 안될 것은 분명하지만 최대 목표치를 뽑으면 순식간에 우승을 하고도 넘쳐나는 숫자들이 나온다. 그래서 희망을 갖고 스프링캠프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감독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자신의 성적표를 올려 잡고 "올해는 기필코 이루리라"는 의욕을 갖고 구슬땀을 흘리는 곳이 스프링캠프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시즌 초반부터 줄줄이 부상병들이 나오고 기대했던 선수는 부진에 빠진다. 믿었던 외국인 선수도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된다. 캠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수박만하게 보이던 공이 시즌에 들어가서는 탁구공으로 변신한다. 시범경기에서 무적의 투수들은 시즌에 들어가서 줄창 얻어맞는다.
스프링캠프는 설정한 목표치를 향해 가는 첫 발걸음이다. 그리고 스프링캠프의 성공 여부는 목표치와 가능치의 격차를 얼마까지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우승 예상 승수는 75승~80승. 가능 수치를 향해 8개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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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IA의 플로리다 전지훈련서 서정환 감독이 장성호의 하체를 밟아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