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타이밍을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하필 비슷한 시기에 방송 날짜를 잡아 서로 비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까. 어차피 비교를 시작하면 어느 하나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을 텐데.
MBC TV 주말드라마 ‘하얀거탑’과 SBS TV 수목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가 비교의 중심에 섰다. 어느 정도 자초한 부분도 있다. 두 드라마는 작품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본격 메디컬드라마’라는 수식어를 공통으로 사용했다. 방송 요일이 다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당에 올려놓고 뒤집어보고 꼬집어 볼 수 있는 공통분모를 마련해 주었다.
‘하얀거탑’은 19일 현재 4회가 방송됐고 ‘외과의사 봉달희’는 이제 2회가 전파를 탔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방송된 내용에 비춰보건 데 두 작품을 한 잣대로 비교해 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감동을 만드는 요소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의학 드라마라는 외연에서 한발짝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하얀거탑’은 이성적 요소를 자극하는 기법으로 무장돼 있는 반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지극히 감성적인 요소를 앞세우고 있다.
‘하얀거탑’은 인간의 근원 속에 숨겨져 있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쫓아간다. 선과 악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 선이 나타나기도 하고 악이 현상되기도 하는 모습을 병원 내 권력다툼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게 하는 요소가 다분해 보는 이로 하여금 ‘본질’을 향해 생각이 치닫도록 몰고 있다.
긴장감을 자극하는 현악기 소리, 보는 눈을 어질하게 하는 극도의 클로즈업, 두 가지 이상의 속뜻을 내포하고 있는 함축적인 대사, 이런 요소들이 인간의 이성에 달라붙어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정길 변희봉 김창완 같은 베테랑 연기자들이 눈빛 하나로 전하는 말은 열 마디 대사보다 전파력이 강하다. 욕망에 함몰되어 가면서도 순간순간 보여지는 김명민의 순수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은 현실적으로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표현이 함축적이고 미묘하다 보니 시청자에 따라 다소 어렵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반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구도가 단순한 편이다. 인물들의 캐릭터가 정형에 가깝게 설정돼 있고 그들의 움직임과 생각은 시청자들의 예상 또는 느낌과 궤를 같이한다. 레지던트 1년차 봉달희(이요원 분)는 이론과 실제가 따로 노는 사고뭉치이고 천재 외과의 안중근(이범수 분)과 이건욱(김민준 분)은 어떤 절박한 상황에도 침착을 놓지 않는 ‘완벽한’ 의사들이다. 봉달희는 덜렁대기는 하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인물이고 똑똑한 동기생 조아라(최여진 분)는 사사건건 봉달희와 충돌하면서 얄미운 구석을 강조하는 악역으로 배정돼 있다. 경쟁과 선악의 구도가 단선적이지만 극에서 다뤄지는 에피소드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병원과 의학이 주는 무거움과 멜로라는 가벼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도 특징이다. 안중근이라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과 봉달희라는 아주 감성적인 여자가 한 작품에서 기싸움을 하고 있다. 두 상반된 캐릭터의 감정적 결합은 결국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방향이 된다. 멜로와 의학이라는 두 바퀴의 조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 나간다면 상당히 매력적인 드라마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라는 두 의학 드라마가 갖고 있는 이런 특성은 시청률에도 반영되고 있다. 완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하얀거탑’은 흥행면에서 10~12% 선에서 머물고 있는 반면 표절논란까지 겹쳐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는 ‘외과의사 봉달희’는 2회 방송에서 16%를 돌파하는 결과를 보였다.
40~50대 여성이 쥐고 있는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 어떤 작품이 통할 지는 아직은 두고 볼 상황이다. 또한 시청률 면에서 어느 한 작품이 앞선다 하더라도 그것이 작품성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큰 덩어리를 숨겨놓고 그 디테일을 작은 눈 떨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와 병원이라는 이성적인 공간에서 가장 감성적인 요소, 즉 인간미를 찾고자 하는 드라마는 제각기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비교의 대상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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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봉달희’(위)와 ‘하얀거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