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어머니 앞에서 당당히 할말은 하고 마는 며느리가 있다. 시어머니에게 자동차 정비는 물론이고 아들 학원비까지 대신 내달라고 부탁한다. 게다가 가져온 세탁물 중 하나가 빈다며 다음부터는 영수증 관리 좀 철저히 해달라고 오히려 충고를 하기까지 하니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이 같은 상황은 MBC 가족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하는 며느리 박해미와 시어머니 나문희의 일상이다. 문희는 자신을 부려먹는 해미가 얄미워 ‘싹퉁바가지’라는 호칭을 쓰며 혼잣말로 욕을 해대는 것으로 나름대로 마음의 위안(?)을 삼곤 하지만 막상 해미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유능한 한의사로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기세등등한 며느리와 이런 며느리가 볼썽사납지만 고분고분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시어머니의 대립으로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급기야 1월 17일 방송분에서는 TV 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호통 치는 모습을 본 문희가 해미에게 윽박지르며 호되게 혼내는 상상신이 방송돼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비단 ‘거침없이 하이킥’의 문희-해미 고부뿐만이 아니다. 일일연속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이세영(최진실)과 그녀의 시어머니 이경선(이효춘)도 기존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상하관계에서 벗어나 절친한 엄마와 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세영이가 경선의 엉덩이를 툭툭 치기도 하고 살갑게 안기기도 하며 경선은 하루 종일 집안일로 고생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서슴없이 하루 휴가를 내주기도 하는 등 사이좋은 고부 사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드라마 속 며느리의 모습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TV 드라마 속 며느리상은 다분히 요즘 시대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며느리도 집안의 구성원으로서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당당히 할말을 피력하거나 마치 친딸처럼 애교를 부리고 장난을 칠 수도 있는 존재라고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
또한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를 적이 아닌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TV 속 며느리의 다소 버릇없어 보이는 행동에 대해서도 시청자들 역시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젊은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하다.
최근 시대의 변화를 쫓아 드라마 속에서 성공을 위해 자기 개발에 몰두하는 일하는 여성,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모습 등을 자주 만나볼 수 있는데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고부간의 상하관계에도 그 변화가 서서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 속 달라진 며느리상은 앞으로도 더 자주, 더 다양한 캐릭터로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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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하이킥'의 박해미(왼)와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최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