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TV와 스크린 속 일본 베끼기가 한창이다. 일본 TV의 인기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제작 편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소재 고갈을 겪고 있는 영화계도 일본 쪽 콘텐츠에 눈을 돌리는 중이다.
한국 연예계의 일본 베끼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쇼프로와 광고 등에서는 1980년대까지 곧잘 표절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저작권 시비가 늘어나고 인터넷 발달에 따른 네티즌 감시가 심해지면서 일본 프로들의 내용을 무단으로 베껴쓰는 일은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대신에 소설, 만화, 드라마의 판권을 사와서 리메이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연예계의 자부심으로 내세우던 '한류'가 몇 몇 스타 중심으로 일본 시장을 파고들었던 반면에 '일류'는 국내 TV와 스크린의 콘텐츠 시장을 직 간접적으로 파고드는 중이다.
본격 의학드라마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MBC '하얀거탑'은 같은 이름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했다. 지난 2003년 후지TV가 창사45주년 기념으로 공을 들여만든 수작이다. 원작은 야마자키 도요코가 쓴 베스트셀러 소설로 1969년 발간됐다. 한국으로 건너온 '하얀거탑'은 어쩔수없이 일본 후지TV의 드라마와 판박이다.
지난해 SBS 전파를 탔던 '101번째 프로포즈'도 일본에서 절찬리에 방영됐던 인기 드라마다. 원작은 키 작고 못생긴 건설회사 만년 계장이 미모의 첼리스트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룬다는 스토리. 이문식을 주연으로 내세운 SBS 드라마는 무대를 방송국으로 바꿔서 리메이크했지만 기본 설정은 그대로였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제작 영화만 100여편을 넘어서면서 충무로는 소재 고갈로 허덕였고 눈을 가까운 일본으로 돌렸다. 문근영 김주혁의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히로스에 료코가 열연했던 일본 드라마를 영화로 리메이크한 케이스. 장편의 드라마를 2시간 안팎 영화로 압축하다보니 스토리 라인이 엉성해졌고 저조한 흥행 결과로 이어졌다. 2004년 정우성 손예진의 흥행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도 일본 드라마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이외 한국 TV와 영화 속 상당수는 아는 새 모르는 새 일본 만화,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를 차용했다. 겉포장만 요란하게 떠들었던 일본 속 '한류'와 달리 조용히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고 있는 게 한국 내 '일류'의 무서움이다.
mcgwire@osen.co.kr
'하얀거탑'(MBC 제공)과 '101번째 프로포즈'(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