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좋아서 야구장으로 신혼여행 왔어요'.
LG 트윈스 인터넷 팬카페에서 만나서 결혼한 부부가 평생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LG 전지훈련지로 와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23일 사이판 수수페구장에 뜻밖에 신혼 부부가 찾아왔다. 이들은 회사원 맞벌이 부부인 안승문(34)-이하나(27)씨.
이들 부부는 지난 2001년 LG 트윈스 인터넷 팬클럽 동호회인 ‘LG 트윈스 야구공’에서 만나 6년간 교제한 끝에 20일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 안승문 씨는 “신혼여행지를 고르던 중 LG 트윈스가 사이판에 캠프를 차린다는 뉴스를 접하고, 아내와 의논한 끝에 사이판으로 오게 됐다. 특히 나는 MBC 청룡 때부터 김재박 감독의 팬이라 LG 유니폼을 입고 있는 감독님을 꼭 한 번 뵙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수창의 열렬한 팬이라는 신부 이하나 씨는 “인터넷 야구 동호회에서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 만큼 신혼여행을 LG 트윈스 전지훈련지로 오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오게 됐다. 실제 와서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니 너무 기쁘고 선수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눠서 너무 뜻 깊은 신혼여행이 된 것 같다. 특히 심수창 선수는 너무 얼굴이 작고 잘생긴 것 같다”고 말해 신랑의 눈치를 받기도 했다.
김재박 감독은 LG가 좋아서 신혼여행까지 사이판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이들 부부를 환대하면서 야구장에서 직접 가이드 노릇을 자처했다. 신랑 신부에게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냐’고 물은 뒤 ‘야. 심수창. 너 여기 와서 사진 한 장 찍어라’고 지시하기도 했고 “배팅 연습장만은 혹시 공 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 다른 곳은 부담없이 들어가셔도 된다. 신혼여행을 일부러 여기로 왔는데 선수들을 가까이서 못 보면 언제 보겠냐”는 등 특별히 배려해줬다. 평소 현지인들이 훈련을 구경할 때 그라운드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달랐다.
또한 김 감독은 이들을 선수들이 휴식하고 있는 쪽으로 데려가 선수들 앞에서 “팬으로서 지난해 LG의 문제점을 뭐라고 생각하시냐. 거침없이 말씀해 보시라”고 질문을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신랑 안승문 씨는 “어렸을 때부터 1년에 30번 정도 야구장을 찾아가 LG 경기를 봤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야구 때문에 국내 경기를 보는 팬들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만이 가진 재미는 해외야구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나 자신도 LG의 열렬한 팬이고 내 주변에도 국내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며 “지난해는 LG가 너무 무기력하게 힘 한 번 못써보고 지는 경기가 많았다. 특히 LG 선수들이 중요한 순간마다 어이없는 실책을 많이 해서 야구장에서 기분 상한 적이 많았다”고 날카로운 말을 해 선수들이 민망해 하는 분위기도 연출됐다.
이들 부부는 4박5일의 빠듯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23일 내내 사이판 수수페구장에서 전 연습과정을 지켜보며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다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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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문씨 부부가 좋아하는 심수창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LG 트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