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지 못하면 관중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승리가 흥행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이 명제는 지난 2년간 대구구장을 홈으로 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를 통해 검증됐다. 2년 내리 챔피언이 됐음에도 관중수는 쪼그라든 이유로 '선동렬 감독의 수비 야구가 재미없어서'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재미'라는 것은 주관적 개념일 뿐더러 설령 그렇다 쳐도 '지키는 야구'로 일가(一家)를 이룬 선 감독의 업적은 선명히 남아있다.
오히려 이 요인 외에 대구 팬들이 이승엽(요미우리) 콘텐츠를 선택했다든지, 대구구장의 열악한 환경, 삼성 프런트의 홍보와 마케팅 전략 부재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삼성은 '행복'했다.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체면조차 못 살려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모기업 볼 낯이 없는 구단들도 있으니 말이다.
'헐값 매각' 논란 속에서도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는 작금의 현대 사태로 한국 프로야구단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와중에도 우리 구단들은 '1등 아니면 전부 패자'인 게임의 룰에 의거, 새 시즌을 맞는다. 그런데 이 와중에 SK 와이번스만큼은 '스포테인먼트'라는 기치 아래 '우승보다 우선되는 게 있다'는 새 가치관을 들고 나섰다.
"문학구장에 3만 관중을 가득 채우고 싶다. 승리와 우승은 그 다음"이라는 김성근 SK 감독의 말에 그 핵심이 담겨있는 '스포테인먼트'는 곧 '팬을 위한 야구'를 지향한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듯 들리는 SK의 '팬이 최고' 마인드가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는 '승리하면 관중은 저절로 온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즉 SK 프런트는 '승리 우선'(이기면 손 놓고 있어도 관중이 몰리고 매스컴이 다룬다)에서 '고객 우선'(승패를 떠나 관중과 매스컴의 호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할 바를 다한다)으로 마인드를 개혁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시즌 최종전을 마친 뒤 조범현 전 감독의 자진사퇴 회견 직후 문학구장 기자실을 찾은 신영철 SK 구단 사장은 "구단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큰 폭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특히 SK의 팀 컬러를 명확히 정립하고 싶다. 그룹의 경영 방침대로 '패기와 근성'있는 야구, '팬을 중심으로 의식하는' 야구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와이번스 구단의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아직은 새 시즌도 시작하지 않았기에 평가를 유보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그 방향성 만큼은 기존 프로야구의 마케팅과 홍보 수준을 한 차원 높인 것이라 봐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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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신영철 사장-김성근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