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는(KBO)는 지난 26일 프로야구 디지털 백일장 당선작을 발표했다. OSEN은 KBO의 허락을 받아당선작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이번 회에는 우수상을 수상한 박정순 씨의 '야구 어록은 살아있다'를 게재한다.
야구 좋아하는 남편은 일상에서조차 야구용어를 쓸 때가 많다. 그날 사건만 해도 그랬다.
연말 송년회 문제로 오랜만에 연락이 된 옛 동창과 전화를 하던 중에 아이들에 대해 물은 모양인데 무심코. 원 스트라이크에 원 볼이라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매 자녀를 두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대화를 엿들은 딸이“아니 아빠는 왜 나를 볼이래?”그야말로 볼이 퉁퉁 부은 채 내게 말했다.
“나쁜 의미가 아냐. 볼이란 투수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이지만 공격수인 타자에게는 유리한 카운트잖니. 좋게 받아들여.”
“아들이 스트라이크라는 편견이 문제잖아. 안 그래. 엄마?”
통화를 마친 남편이 사태를 눈치 채고 수습에 나섰다.
“아빤 너를 스트라이크로. 오빠를 볼이라고 표현한 거야. 오해하지 마라. 스트라이크 우리 딸.”
“변명 참 절묘하네. 만약 아빠가 오늘 같은 파울을 세 번 하면 집에서 삼진아웃 시켜버리자.”
“엄마까지... 우리 가족 전체가 아빠 때문에 온통 야구 물이 들어버렸어요.”
“그러게 말이야. 아마 니네 아빠가 야구장에 갖다 바친 돈을 잘 모았으면 프로구단 하나 인수할 거다.”
“인기 다 떨어진 프로야구팀을 뭐하게요. WBC 대회 4강으로 새해를 시작한 국가대표 팀이 일본 사회인 야구한테 조차 무참하게 깨지고 한해 마무리를 한 판국에. 프로야구 선수들인 거 맞아?”화살은 엉뚱하게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들에게로 날아갔다.
“열 번 잘하다가 한번 못한 걸 가지고 왜들 그러냐.”
“스포츠 세계에서 패배란 있기 마련이지만 선수들 대부분이 고액 연봉을 받으니까 그만큼을 기대했거든. 사람이 등 따습고 배가 부르면 해이해지나 봐.”
“그렇게 매도할 일만은 아니잖아요. 최고 선수들이라고 늘 잘하라는 법이 있나요. 여러 변수가 생기기 마련인 걸. 야구는 계속되고 기회란 반드시 있어요. 다음에 이기면 되지요.”
인천의 내로라하는 야구 명문고 출신인 아들은 활약이 부진했던 자기 학교선배를 감싸기에 급급한데.
반대로 딸은 비인기종목 팀을 가진 여학교 재학생이라서 차라리 어려운 선수들이 승부근성은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이러고 보면 야구 때문에 의견이 분열되지만 야구를 통해 가족이 공동관심사를 논하는 장점도 있지 않은가.
곰곰 새겨들으니 이제껏 오간 대화 요지가 나한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보험설계사인 나도 프로인 셈이지만 뜻과 맘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하여 1.2.3.루를 향해 밤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뛰지만 성과가 좋을 때가 있고 허탕일 때도 있다. 그래도 오늘만은 멋진 홈런을 치고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접지 않는다.
나는 프로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프로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 이겨야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성은 모든 이에게 무한히 열려있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 크게 하고 힘차게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