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만 부각되는 의학드라마, 의료 불신 우려
OSEN 기자
발행 2007.02.05 08: 35

드라마는 드라마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드라마는 없다. 몽환적 세계를 탐닉하는 판타지조차 선악을 구분하는 인간의 본성에 호소한다. 사실적인, 내지는 사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잘 만들어진 의학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면서 그 부작용에 대한 염려도 생겨나고 있다.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은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다. 종합병원의 부조리한 정책 결정과정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달픈 면면을 드라마를 통해 속속들이 받아들인 시청자들이 색안경을 끼고 병원과 병원 사람들을 바라본다면 이는 예기치 않은 불행이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건 ‘실제 같은 잔상’ MBC TV ‘하얀거탑’에서 그려지는 대학병원은 야망과 불신, 그리고 탐욕으로 점철된 욕망의 탑 그 자체이다. 종합병원 외과과장 선거를 둘러싼, 온갖 타락한 정치적 양상은 외과과장이라는 위치를 덕망과 학식을 갖춘 이에게 어울리는 자리로 보지 않고 각종 이권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신분쯤으로 오인할 수 있다. 병원과 제약회사의 커넥션도 그렇다. 밤 늦게 귀가하는 외과과장의 집에 제약회사 사람이 과일박스를 갖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돈 덩어리가 들어있다. 전임 외과과장이 살고 있는 대궐 같은 집도 좋게만 볼 수는 없는 실정이다. 오직 환자만을 생각한다던 평소의 신조와는 일치되지 않는 그림이다. 환자의 처지에서 더욱 ‘드라마 속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부분은 질병에 대한 진단과정이다. 학문적 지식과 의학적 경험만을 바탕으로 냉철하게 판단되어야 할 진단 행위가 의사 조직의 헤게모니에 의해 왜곡된다면, 그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목숨은 헤게모니 싸움에 희생되는 볼모에 불과하다. 신임 외과과장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욕망에 눈이 먼 장준혁(김명민 분)이 자신의 ‘일반’ 환자를 등한시 하는 설정이 현실 속의 모습이라면 의료 행위에 대한 신뢰감은 심각한 손상을 입을 것이다. SBS TV ‘외과의사 봉달희’가 주는 불신도 마찬가지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에 내려지는 진단이 레지던트 1년차의 판단에 좌지우지 되어 결국은 싸늘한 주검으로 실려나간다면 그런 현실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그것이 명의가 되어가는 ‘학습과정’이라면 담보로 제공된 환자의 목숨은 너무나 큰 희생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얀거탑’은 욕망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파멸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훌륭한 의사로 변모해 가는 햇병아리 의사의 성장기를 그리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영화와 다르다. 영화에서처럼 대반전으로 인한 결말이 부각돼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 것이 아니라 한회 한회 그려지는 과정도 시청자들의 뇌리 속에 크게 자리 잡는다. 최도영 안중근의 보완재 활용도 높여야 물론 이런 드라마 내용은 모두 허구이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허구’라고만 주장하기에는 의료 자문이 너무 철저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현역 의사를 보조 작가로 기용해 사실감을 높였다. ‘하얀거탑’은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 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방송된 내용은 원본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토착화 됐다. 환자의 처지에서는 드라마 내용이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단순한 에피소드일 뿐이라는 판단이 서든가, 아니면 과거는 그랬더라도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확신이라도 있어야지만 안심할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작가는 극적인 효과만을 노린 이런 극한 상황보다는 좀더 인정 가능한 에피소드들을 찾아 보아야 한다. 배치되는 인물을 좀더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장준혁과 대비되는 최도영(이선균 분), 봉달희(이요원 분)와 대비되는 안중근(이범수 분)을 보완재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지금도 이 방법이 동원되고 있지만 장준혁의 욕망과 봉달희의 어설픔을 상쇄하기에는 활약이 너무 소극적이다. 또한 만약의 하나, 드라마에서 그려지고 있는 모습들이 정말 의료계의 현실이라면, 의료계는 드라마를 탓할 게 아니라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병원 권력에 얽힌 커넥션이 자생하지 않도록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경험이 일천한 의사들에 의해 위험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이중삼중으로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놓은 드라마라면 그 사회적 책무에도 분명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의료계의 변신을 촉구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갖든지, 그게 아니라면 병원 내 극적 상황 설정을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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