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로스앤젤레스, 김형태 특파원] 뉴욕은 '멜팅팟(용광로)'이다. 전세계에서 수많은 이주민이 몰려들어 세계 최대의 도시를 형성했다. 저마다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융화가 잘 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장점을 흡수해 오늘날 '세계의 문화 경제 수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 뉴욕 퀸스에 홈구장을 두고 있는 메츠는 '짬뽕 구단'이다. 지난 1962년 창단한 메츠는 초기부터 '뉴욕 야구의 계승자'를 표방했다. 팀의 상징부터 뉴욕을 연고로 했거나 하고 있는 서로 다른 3개 구단의 그것을 따왔다. 모자에 박혀 있는 오렌지색 NY 로고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뉴욕 자이언츠 것을 그대로 베꼈다(자이언츠의 오렌지색 NY로고는 1934년 창단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렌지색 YG 로고에서 먼저 계승됐다. 요미우리는 뉴욕 자이언츠를 '롤모델' 삼아 창단한 구단이다). 모자와 언더셔츠의 상징색깔인 푸른색은 LA로 이주한 브루클린 다저스의 '다저 블루'를 모방했다. 마지막으로 홈구장 유니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줄무늬는 뉴욕의 '터줏대감'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를 계승한 것이다. 메츠의 홈구장 셰이스타디움이 위치한 퀸스 플러싱 역시 다국적 문화가 혼합돼 있는 곳이다. 초창기 일본 이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던 이곳은 한국 교민들이 터를 잡으면서 뉴욕 최대의 코리아타운으로 입지를 굳혔다. 요즘은 플러싱 주위에 중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규모 상권이 형성된 이곳의 노동자는 주로 남미 출신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서로 공생하면서 뉴욕의 한 축을 받치고 있다. 메츠는 말 그대로 다국적 군단이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오마르 미나야 단장을 위시해 흑인 감독 윌리 랜돌프, 그리고 수많은 라틴계열 스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전 야수 8명 가운데 5명이 중남미 출신이다. 선발로테이션에는 '히스패닉의 영웅'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뉴욕의 백인들이 주로 양키스를 응원하는 반면 라틴 팬들 사이에선 메츠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이런 메츠에 합류하게 된 박찬호(34) 역시 다국적 문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 산 증인이다. 21세이던 지난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그는 샌안토니오(텍사스)와 앨버커키(뉴멕시코), 그리고 LA(캘리포니아)를 거쳐 알링턴(텍사스),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 미국에서만 13년을 보내면서 그는 서로 각국 야구 문화를 온 몸으로 느껴왔다. 라틴 선수들의 습성, 백인 및 흑인 선수들의 특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 토양은 한국야구가 제공했다. 팬들 사이에선 박찬호의 뉴욕 입성을 앞두고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내셔널리그 최강팀 메츠에서 뛰게 된 점에 팬들은 환호하지만 일각에선 선발로테이션 진입을 낙관할 수 없다고 신중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박찬호는 개의치 않는다. 기본연봉 60만 달러라는 박한 조건도, 선발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는 우려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부상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제 본인이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있게 된 점을 무엇보다 반가워한다. 젊은 선수들과 치러야 할 스프링캠프서의 선발 경쟁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실력으로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자신만만하다. 약관의 나이에 미국 무대에 도전했던 박찬호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육박했다. 미국 야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지 올해로 14년째.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힘찬 부활의 날개짓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