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그놈 목소리'가 목소리 때문에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에 휘말렸다. 소송 당사자는 당시 이군의 어머니였던 A씨. 영화 속 김남주가 연기한 인물의 실제 모델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A씨가 유괴범과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그대로 내보낸 것이 문제였다. '공개 수배극'이라는 슬로건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제작사는 예고편과 극중에서 실제 범인 목소리를 들려줬고 이 와중에 A씨 등 가족의 목소리도 관객들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A씨는 소장에서 '사전 동의없이 영화에 내 목소리를 삽입하는 바람에 잊고 싶은 과거가 드러났고 사생활이 침해당했다'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 사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제작사측은 "이형호군 유괴 사건은 영화의 모티브일 뿐이지 스토리 구성은 허구다. 또 이군의 인격권은 친부모에게 있고 두 사람 모두에게 영화화와 관련된 사전 동의를 받았다"며 "극중 사용된 녹취록은 이미 경찰이 공개수배하면서 전국에 방영됐던 것이라 문제 없을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A씨가 친모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지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 데 오히려 피소를 당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또 이군 아버지는 범인을 꼭 잡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놈 목소리'에서 녹취록 공개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군 친엄마의 동의는 얻으면서 사건 당시 이군을 기른 새엄마에게 아무런 양해없이 영화 제작을 진행한 사실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소송 보도가 나간 뒤로 일부 네티즌들은 '친엄마가 아니라 이러냐' 등의 악플을 달고 있지만 현실 속 A씨 자신의 고뇌는 누구도 가늠할 일이 아니다. '죽어도 좋아' '너는 내운명'의 박진표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공소시효 만료와 상관없이 잔혹한 유괴범이 누군인지를 찾아내고 싶다는 의사를 몇차례 강조한 바 있다. 방송 PD 출신인 그는 1992년 이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의 조연출을 했다. "그 때부터 언젠가 꼭 영화로 만들겠다. 공소 시효에 상관없이 그 놈을 붙잡아 파렴치한 그 얼굴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말겠다"는 의지였다. 개봉 3주차에 들어간 '그놈 목소리'는 전국 230만명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박 감독의 의중대로 아이를 가진 많은 부모들이 유괴 살인의 잔혹성에 공감하며 범인 찾기에 나서는 중이다. 설경구가 형호 군의 방송국 앵커인 아버지, 김남주가 엄마 역으로 출연했다. 실제 유괴 사건이 진행된 기간은 44일. 영화 속 강동원이 목소리를 연기한 유괴범은 전화 통화만으로 형호군 부모의 넋을 빼고 속을 찢었다. 그리고 9살 소년은 한강 배수로에서 차디찬 시체로 발견된 뒤에야 엄마의 품에 안겨 고이 잠들었다. mcgwire@osen.co.kr 영화사 집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