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연습경기였으나 투지는 한국시리즈 7차전보다 강했다. 3일 일본 규슈 남단의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가운데 롯데와 현대간 첫 연습경기를 앞둔 가모이케 구장. 경기 시작 전 현대 주장 이숭용(36)이 선수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김시진 감독님의 첫 경기다. 따라서 오늘은 연습경기가 아니다. 무조건 이겨서 승리를 안겨 드리자"고 당부했다. 선수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투지 넘치는 눈빛을 교환했다. 1회말 선발 장원삼이 이대호에게 그만 장외 홈런을 맞았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실점이었다. 마운드에 오른 투수들은 긴장감을 갖고 전력 피칭을 했다. 타석에 들어간 타자들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외야수들은 다이빙 캐칭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졌다. 최고참 전준호는 먼지가 날리자 직접 물을 뿌리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날 경기의 압권은 6회초 2-2에서 맞이한 무사 만루. 공교롭게도 타석에는 주장 이숭용이 들어섰다. 이숭용은 정규 시즌에서도 잘 보여주지 않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어가며 임경완과 실랑이를 벌였다. 볼카운트 2-2까지 몰렸지만 파울볼을 쳐냈고 결국 오른쪽 담장까지 굴러가는 2루타를 터트렸다.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김시진 감독은 9회말 1사 후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아웃카운트 2개를 남겨놓고 소방수 박준수를 불렀다. 직접 볼을 건넸고 박준수는 가볍게 두 타자를 요리하고 승리를 지켰다. 구단이 존폐 위기에 몰려 마음은 어지러웠으나 오히려 일사불란하게 똘똘 뭉쳤고 비록 비공식 경기지만 감독에게 데뷔 첫 승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첫 승 소감을 묻자 김시진 감독은 "무슨 첫 승이냐. 그냥 연습경기일 뿐이다"고 말했지만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구단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다들 마음이 편하겠는가. 오늘 이기려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이숭용은 "오늘 같은 날 이겨야지 언제 이기겠는가. 후배들을 불러놓고 감독님께 1승을 선물하자고 했다. 내가 결승타를 쳐낸 것도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구단은 어렵지만 우리는 이기려고 마음 먹으면 이기는 팀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sunny@osen.co.kr 김시진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