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선후배들, '비운의 투수' 박동희 애도
OSEN 기자
발행 2007.03.22 14: 05

"한창 일할 나인데 먼저 떠나서 참 아쉽다". 22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만난 강병철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이날 새벽 교통사고로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애제자' 고 박동희 씨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박 씨의 부산고-고려대 후배인 손민한은 "정말 존경하는 선배가 세상을 떠나 슬프다. 내게 박동희 선배는 한국 최고의 투수로 기억돼 있다"며 슬픔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지난 1992년 부산고 졸업 직후 롯데에 입단한 염종석은 "신인 때 동희 형과 난 룸메이트였다. 동희 형은 의리있는 남자다운 선배였다. 신인이었던 내게 많은 조언을 해줬는데 슬픈 소식을 접해 착찹하다"고 밝혔다.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눈 공필성 수비 코치는 "내 친구 동희는 화통한 성격에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리더였다"며 떠난 친구를 회상했다. 박 씨는 아마 시절부터 국가대표 부동의 에이스로 명성을 날렸다. 고교 시절부터 시속 150km대의 강속구를 뿌리던 그는 고려대 진학 후 '제2의 선동렬'로 관심을 끌었다. 박 씨는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입단 제의를 뿌리치고 당시 최고 계약금인 1억 5200만 원을 받고 고향 팀인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 첫 해 10승 7패 7세이브를 거둔 뒤 이듬해인 1991년 14승 9패 3세이브를 올리며 주축 투수로 자리 매김했다.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2승 1패를 거둬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질병인 통풍성 관절염에 시달리며 부진의 늪에 빠져 1997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해 5년간 7승에 그친 뒤 2002년 유니폼을 벗었다. 12년 통산 59승 50패 58세이브에 방어율 3.67를 기록한 박 씨는 은퇴 후 건설 회사에 입사해 샐러리맨 생활을 했고 최근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음식점을 경영해왔다. 박 씨의 빈소는 부산 수영구 광안동 좋은강안병원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부인과 11세, 5세된 두 딸이 있다. 롯데는 구단 명의로 빈소에 조화를 보냈고 선수단은 이날 시범경기 후 단체로 조문할 예정이다. what@osen.co.kr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기뻐하는 박동희=롯데 자이언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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