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로스앤젤레스, 김형태 특파원] 올 시즌을 불펜에서 출발하게 된 박찬호(34.뉴욕 메츠)는 지난 1998년 이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미들 릴리버'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불펜행이 결정된 박찬호의 구체적인 보직을 두고 당초 뉴욕 언론은 롱릴리프를 맡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메츠 공식 홈페이지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프라이머리 셋업맨 애런 하일만에 앞서 투입되는 중간계투일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메츠는 롱릴리프 후보로 꼽힌 애런 실리와 박찬호를 모두 개막전 로스터에 등록할 방침인데 실리에게 롱릴리프, 박찬호에게는 숏 릴리프를 맡길 계획이다. 6회 또는 7회 등판해 1∼2이닝을 처리하고 하일먼에게 바통을 넘기는 역할이다. 때로는 위기상황에서 등판, 오른손 타자 한 명만 상대하고 바통을 넘길 수도 있다. 지난 겨울 메츠와 스플릿계약을 맺은 실리가 "트리플A로 강등된다면 차라리 은퇴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친 데다 빈약한 메츠 투수진의 사정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보인다. 선발진이 부실한 메츠는 불펜 또한 확고한 신뢰를 갖기에 부족하다. 마무리 빌리 와그너, 8이닝용 셋업맨 하일만과 두 명의 좌완 스페셜리스트(스캇 쇼너와이스, 페드로 펠리시아노)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투수가 없다. 호르세 소사와 앰비오릭스 부고스는 시범경기 부진으로 마이너행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한때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듀애너 산체스는 어깨 부상으로 5월쯤에나 복귀가 가능하다. 메츠는 4월 초반 4명의 선발투수와 7명의 불펜투수 등 모두 11명으로 투수진을 운용할 계획인데 박찬호와 실리를 빼면 기용할 투수가 마땅치 않다. 톰 글래빈, 올란도 에르난데스, 존 메인, 올리버 페레스와 신예 마이크 펠프리로 결정된 선발진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글래빈과 에르난데스가 불혹을 넘긴 노장인 데다 들쭉날쭉한 페레스, 경험이 일천한 펠프리 등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다. 문제는 이들 중 한 두명이 흔들릴 경우 마땅한 대안을 팀내에선 찾기 어렵다는 것. 공백이 생긴다면 이 자리를 메울 후보는 박찬호와 실리인데 실리가 유니폼을 벗고 박찬호가 트레이드를 요구할 경우에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그럴바에야 두 명의 베테랑 투수를 함께 불펜에 기용하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현명한 방책이다. 이른바 '보험용'으로 이들을 대기시켜놓겠다는 복안이다. 산체스의 이탈로 구원진 충원이 어려운 데다 선발진에 구멍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을 감안한 구단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오마 미나야 단장과 윌리 랜돌프 감독은 25일 볼티모어전 직후 박찬호와 가진 특별 면담에서 이 같은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팀 사정이 이런 만큼 여러 가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박찬호가 시즌을 불펜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했을 것이다. 홈페이지도 투수진 형편상 실리와 박찬호가 모두 필요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박찬호는 선발은 물론 롱릴리프와 숏릴리프, 심지어 마무리까지 소화가 가능하다. 어떤 역할을 맡겨도 제몫을 해줄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영원한 선발투수로 여겨온 박찬호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인 것 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미나야 단장은 재빠르게 박찬호 달래기에 나섰다. 박찬호와 면담을 가진 뒤 프레드 윌폰 구단주, 랜돌프 감독, 릭 피터슨 코치와 따로 미팅을 한 그는 현지 기자들과 만나 "박찬호가 이번 조치에 다소 불편해하고 있는 점을 알고 있으며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단 수뇌진이 선수 한 명의 심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메츠는 박찬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해준다.. 미나야는 "올 시즌 내내 불펜에서만 뛰라고 한다면 방출요구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한 박찬호의 언급에 대해서 "시즌 중 선발로 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계투로 활약하다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면 박찬호가 그 자리를 메우는 방안이 현재로선 유력한 시나리오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