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드라마에서 불륜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순수 멜로는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추세이지만 불륜이라는 코드는 아직까지 제법 명함을 내밀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칭 ‘불륜 드라마’도 다 같은 불륜 드라마는 아니다. 세월의 흐름을 타고 그 표현의 정도는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가고 있고 좀더 색다른 불륜을 찾기 위해 드라마 제작자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SBS TV에서 4월 2일 첫 방송 예정으로 준비 중인 새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김수현 극본, 정을영 연출)도 그 외연은 영락없는 불륜 드라마다. 그러나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자나 연출자, 배우들은 ‘뭔가 다른’ 불륜 드라마라고 자꾸 강조한다. 3월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 사옥 내 SBS홀에서 열린 ‘내 남자의 여자’ 제작발표회에 나선 드라마의 주역들이 한결같이 주장한 내용도 바로 이것이다. ‘불륜 드라마’는 맞지만 어떡하면 ‘불륜 드라마’로만 인식되지 않도록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SBS 드라마국의 수장인 공영화 드라마국장은 인사말을 통해 “비슷한 소재, 비슷한 스토리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는 달라지는 것”이라며 ‘깊이 있는’ 불륜 드라마임을 강조했다. 작품 제작의 현장 책임자인 정을영 감독은 차마 ‘불륜’이라는 말을 거론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공개돼 신비감이 떨어지지나 않았나 걱정된다. 알다시피 그런 내용이고 주어진 대본으로 훌륭한 연기자들과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드는 중”이라고 핵심을 비켜가는 말을 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보여진 내용은 ‘과연 안방 극장 방영이 문제가 없나’를 걱정할 정도로 표현의 수위가 높았다. 드라마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불행한 환경에 빠진 한 여자 화영(김희애 분)이 있다. 이 여자는 여고 동창 지수(배종옥 분)의 가정으로 여차여차 흘러 들어가는데 이 시점부터 문제가 불거진다. 사랑에 굶주린 화영이 지수의 남편 준표(김상중 분)에게 불 같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만다. 둘의 위험한 사랑 놀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강도 높은 불륜을 배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김희애는 “진한 키스신도 있고 93년 ‘폭풍의 계절’ 이후 이처럼 강한 캐릭터가 처음이라 처음엔 망설임이 컸다. 첫 날 촬영을 하고 모니터링을 하니까 망설임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나를 버리자’는 심정으로 촬영에 임했더니 이제는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불륜’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던지 “불륜은 첫 회에 다 들통이 난다. 이후의 상황은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갈등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말을 이었다. 결국 단순한 ‘불륜 드라마’라기 보다는 고차원적인 ‘심리 멜로 드라마’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말 속에 녹아 있다. 김희애와 캐릭터 대결을 펼쳐야 하는 배종옥도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불륜에 대한 이야기는 1회부터 밝혀지기 시작해 4회가 되면 지수(배종옥)도 다 알게 된다. 드라마가 24부작인데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지 않겠나. 내가 작품을 해서가 아니라 정말 (캐릭터가) 치열한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불륜을 미화한다거나 또는 불륜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하는 것을 말하는 드라마는 아니라고 본다”고 또박또박 밝혔다. 배우들의 이런 주장들은 사실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까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겉보기엔 강도 높은 불륜 드라마가 분명한데도 굳이 그 속에서 다른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는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다. 어쨌거나 이날의 제작발표회에서 보여진 ‘내 남자의 여자’는 ‘내지르는 불륜’이 아니라 ‘정리하는 불륜’이다. 이왕에 닥친 불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두 가지 불륜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은 내주 월화, 드라마를 지켜보고 나서 내릴 수 있겠다. 100c@osen.co.kr ‘내 남자의 여자’의 주연배우들. 왼쪽부터 김희애 김상중 배종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