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을 위한 헌정 1승이 아니었을까. KIA 이대진(33)의 부활을 논하자면 김상진을 빼놓을 수 없다. 김상진은 지난 99년 위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아기호랑이. 이대진과 김상진은 광주의 진흥고 3년 선후배로 유난히 친했던 사이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게 97년 한국시리즈는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두 투수는 KIA의 전신인 해태의 9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이었다. 에이스 이대진은 97년 LG와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과 4차전 승리투수였다. 당시 20살의 아기호랑이었던 김상진은 5차전 2피안타(2볼넷) 1실점 완투로 팀의 6-1 승리를 이끌었다. 해태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경기였던 1997년10월 25일. 잠실구장은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경기 중반부터 먹구름이 몰려왔고 만추의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선발투수 김상진은 3회까지 다소 흔들리며 1실점했으나 4회부터 9회까지 18명의 타자를 완벽하게 틀어막고 우승 포옹을 하는 기쁨을 누렸다. 당시 잠실구장은 해태의 9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알리는 오색 종이들로 뒤덮였고 마지막 타자를 잡고 두 팔을 벌리며 해맑게 웃던 김상진. 그러나 그는 이듬해 위암이 발병, 99년 6월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당시 이대진은 후배의 죽음 앞에서 "앞으로 1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김상진을 기억하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배번도 김상진의 11번을 달았다. 김상진의 몫까지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대진도 97년 한국시리즈를 기점으로 하강곡선을 그렸다. 98년 12승을 거둔 뒤 99년 갑자기 어깨통증을 일으켰고 이후 8년 동안 깊고 어두운 부상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해태와 KIA는 두 명의 걸출한 투수들이 죽음과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한국시리즈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김상진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던 97년 한국시리즈 이후 어느 새 10년이 지나갔고 한국시리즈 무대는 이제 KIA의 한(恨)으로 남아있다. 그 10년 동안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던 구단은 KIA(해태)가 유일하다. KIA만이 씁쓸하게 다른 팀들의 한국시리즈 잔치를 지켜봐야 했다. 지난 2001년 해태를 인수한 KIA도 6년 동안 두 차례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시리즈행에 도전했지만 낙마했다. 이대진은 2007년 4월 7일 김상진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던 잠실 마운드에 다시 올라 6이닝 무실점의 역투로 부활을 알렸다. 상대팀도 LG. 가족도 웃고. 팬들도 웃고. 온 야구인이 이대진의 재기를 반겼다. 그리고 저 하늘 어딘가에서 김상진도 해맑은 미소로 선배의 쾌투를 축하했을 것이다. sunny@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