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장인을 태우고 하늘을 날다
OSEN 기자
발행 2007.04.12 09: 19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에서는 천년을 산 고송의 향이 배어난다. 필름 곳 곳에 장인들의 땀내와 입김이 서려있는 까닭이다. 영화계의 장인 임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요즘 보기 드물게 평생을 영화판 동지로 한솥밭을 먹어온 바늘과 실이다. 당연히 '천년학' 촬영도 함께 했다. 옛 정취가 물씬 나는 시골 고택 위로 벚꽃이 눈발마냥 날리는 '천년학'의 명장면 광양 별채씬도 노병 둘이서 힘을 합쳐 만들어낸 작품이다. 한국 영화계의 산 증인이랄수 있는 임감독의 작품이다보니 전통문화의 대가들이 대거 영화 스탭으로 자원 참여했다. 영화 곳곳에 보물들이 숨어있는 배경이다. 극중 소품으로 쓰인 병풍만 봐도 그렇다. 서예계의 거두 하석 박원규가 직접 쓴 것으로 시가 8000만원을 호가한다. 지난 23년 동안 작품 세계에만 몰두해온 그는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나게 될 '천년학'이기에 잠시 스쳐가는 장면이라도 제대로 된 글씨를 보여주고 싶다'며 자신의 소중한 글을 전달했다. 이 병풍은 광양 별채 세트장에 앞으로도 계속 남게될 예정이다. 제작진이 이번 촬영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않았던 광양 매화마을 주민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기증한 때문. 영화 속 오정해의 단아하고 청초한 한복은 김혜순의 작품이다.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TV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 역 하지원을 감쌌던 화려한 한복 의상들을 만들었던 복식연구가다. 대하사극 '토지'와 '해신'의 극중 각종 의상들도 그의 손끝을 거쳐서 탄생했다. 입과 코로 즐기는 명품도 등장한다. 영화 속 지역 유지인 '백사 노인'의 회갑연 때 스크린을 화려하게 수놓는 잔칫상 역시 보통 음식이 아니다. 궁중요리 전수자 한복녀의 손맛이 들어간 맛깔진 음식들이다. 그 상차림에 들어간 비용만도 1000만원을 웃돌았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 임 정, 두 감독은 그 놀라운 상차림에 감탄을 금치못하고는 상 앞에 앉아 기념 촬영까지 했다. 이밖에도 김동호 조명감독, 이예호 소품기사 등 50년 경력을 넘나드는 베테랑 스탭들이 '천년학' 촬영을 함께 했다. 묵을수록 맛을 더하는 게 우리네 장맛이다. 김치도 몇년을 저장한 묵은지가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것처럼. '천년학'은 그런 영화다. 대가와 장인들의 경륜이 펼쳐진 한국영화의 장이고 묵은지인 셈이다. 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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