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소설 을 읽다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승을 하면 인천을 떠난다'. 작가는 '미추홀의 저주' 따위를 얘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욕과 멸시의 역사 속에서도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 온 인천야구(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는 문구에 가깝다. 그런데 그 인천 팀이 2007년 4월 17일 현재 어울리지 않게도(?) 영광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제 겨우 10경기 치렀을 뿐이지만 SK 와이번스의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치 신의 가호라도 받는 듯하다. 벌써 3차례나 12회 연장 혈투를 벌였으나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특히 지난 15일 두산전은 상대 실책 덕분에 실로 '어이없이' 이겼다. 또 17일 KIA전은 단 1안타를 치고도 1-0으로 이겼다. 안타 1개 치고 이긴 경우는 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라 한다. 특히 타점 없이(에러로 득점이 났다) 이긴 사례는 역대 최초다. 개막전에 이어 0-1 패배를 두 번이나 당한 KIA 제1선발 윤석민으로선 머리에 김이 날 지경이겠지만 SK의 5연승(중간에 1무승부)은 현재진형형이다. SK는 17일까지 6승 2무 2패를 거두고 있는데 이 중 4승이 역전승이고, 1점차 승리 역시 4번 있었다. 즉, SK의 전력이 타 팀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별의 별 행운과 '야생야사' 김성근 SK 감독, 선수들의 허슬 플레이와 구단 프런트의 의욕이 맞물리면서 '어쨌든 희한하게' 잘 나가고 있다. 더군다나 인천 유니폼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한 SK이기에 설령 우승을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떠날 일은 없을 듯하다. 문학구장을 방문하면 삼미나 청보의 후예로서 'SK가 인천야구의 적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증표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역사라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 SK를 이제야 '승부의 여신'도 갸륵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일까. sgo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