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트로피카나필드(세인트피터스버그), 김형태 특파원] 모자를 벗은 유제국(24.탬파베이 데블레이스)의 머리는 싹뚝 잘려 있었다.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선배 서재응(30)이 18일(이하 한국시간) 볼티모어전에 앞서 정성껏 깎아줬다. 머리 상태로 볼 때 이발 솜씨가 수준급이다. 날이 더워서 그런 것은 아닐 터.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전날 2루타 3개를 잇달아 맞고 3실점, 시즌 첫 블론세이브와 패전을 떠안은 아픈 기억이 있다. 결과보다 더 유제국을 괴롭힌 것은 당시 선발투수였던 제임스 실즈(26)의 행태 때문. 실즈는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의자를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팀이 아닌 자신의 승리가 날아간 사실에 '광분'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면목이 없던 유제국이 얼마나 겸연쩍었을까. 머리를 밀며 의지를 다진 유제국이지만 투구 내용에는 불만이 없다. 결과가 안 좋았을 뿐 자신은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순진하게 볼배합한 게 아쉽지만 투구 내용에는 만족해요. 내가 던질 수 있는 공을 다 던졌고 운이 안 따랐을 뿐인데요 뭘".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록표만 보면 '난타'를 당한 것으로 알기 쉽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갑작스럽게 등판 지시가 내려져 몸을 제대로 풀 수 없었다. 지난 11일 텍사스전 이후 5일간이나 개점휴업 상태였던 그다. 이 기간 중 불펜에서 몸을 풀라는 코치의 지시도 없었다. 그런데 17일 경기선 7-5로 앞선 7회 1사가 되자 갑자기 등판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부랴부랴 공 몇 개를 던지고 마운드로 향했지만 감이 살아 있을 리 만무했다. 운도 무척이나 없었다. 첫 타자 미겔 테하다의 타구는 배트 끝 부분에 맞은 파울성 타구였으나 이상하게 휘어 3루 파울라인 바로 안쪽에 떨어졌다. 후속 오브리 허프에게 허용한 안타 역시 배트가 부러질 정도로 '막힌' 타구. 그러나 유격수와 중견수 사이에 절묘하게 떨어졌다. 탬파베이 수비진의 미숙한 중계플레이로 단타가 2루타로 연결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제대로 허용한 안타는 제이 기븐스에게 맞은 2타점 짜리 중견수 오른쪽 2루타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구원한 션 캠프가 불을 더 지르면서 유제국은 패전투수로 이름을 올려야 했다. "솔직히 실즈한테 미안하죠. 앞서다가 승리를 날렸으니. 그렇지만 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결과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마운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유제국의 공을 받아준 포수 디오네르 나바로(23)는 유제국을 찾아가 용기를 북돋아줬다. "내가 보기에도 참 잘 던졌어. 운이 없었는데 어쩔 수 없잖아. 의기소침해지지 말고 힘내자". 실즈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 씀씀이 만은 큰 형 못지 않은 나바로였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