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한국영화의 위기를 말하다
OSEN 기자
발행 2007.04.29 07: 53

천년학이 훨훨 날기에 이 땅은 너무 척박해진 것일까.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기대에 못미치는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다. 우리 고유의 멋과 한, 미를 다룬 수작이 그대로 묻혀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 4월12일 서울 46, 전국 201개 스크린에서 막을 올린 조재현 오정해 주연의 '천년학'. 극장주들이 스크린 늘이고 줄이기를 결정하는 개봉 첫 주말 스코어에서 7만여명을 동원했다. 나름대로 선전한 상황. 그러나 스크린은 개봉 2주차에 전국 130여개로 뚝 떨어졌고 관객수도 덩달아 뚝 떨어졌다. 그리고 4월 마지막 주말을 지나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스파이더맨 3'가 개봉한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에서 일반 관객이 '천년학'을 관람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많은 영화인들의 격려와 지지에도 불구하고, '서편제'의 소리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천년학'의 비상은 곧 한국영화 모두의 현재 상황을 잘 보여주는 바로메터다. '천년학'에는 천년을 산 고송의 향이 배어난다. 필름 곳 곳에 장인들의 땀내와 입김이 서려있는 까닭이다. 영화계의 장인 임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요즘 보기 드물게 평생을 영화판 동지로 한솥밭을 먹어온 바늘과 실이다. 당연히 '천년학' 촬영도 함께 했다. 옛 정취가 물씬 나는 시골 고택 위로 벚꽃이 눈발마냥 날리는 '천년학'의 명장면 광양 별채씬도 노병 둘이서 힘을 합쳐 만들었다. 이밖에도 김동호 조명감독, 이예호 소품기사 등 50년 경력을 넘나드는 베테랑 스탭들이 '천년학' 촬영을 함께 했다. 묵을수록 맛을 더하는 게 우리네 장맛이다. 김치도 몇년을 저장한 묵은지가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것처럼. '천년학'은 그런 영화다. 대가와 장인들의 경륜이 펼쳐진 한국영화의 장이고 묵은지다. 그런 '천년학'의 조기 퇴진 분위기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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