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스포츠의 꽃이라는 농구가 인기를 얻던 농구대잔치 시절, 무적의 연세대학교를 이끌며 오빠부대를 몰고 다녀 '코트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우지원(34)은 챔피언 반지가 더없이 감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에서 10년 동안 뛰면서 처음으로 맛보는 챔피언 등극이었기 때문이다. 연세대 시절 각종 상을 휩쓸고 우승을 밥먹듯 하던 그였지만 정작 프로에 들어와서는 챔피언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대학 시절 코트의 황태자였다면 프로에서는 황제로 대관식을 치러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 인천 전자랜드의 전신인 인천 대우증권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지만 팀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1997시즌과 1997~1998시즌 2년 연속 6위를 차지한 데 이어 1998~1999시즌 3위에 올랐지만 모두 6강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셨던 것. 2000~2001시즌 챔피언 수원 삼성(현재 서울 삼성)에 합류했지만 팀은 8위로 곤두박질쳤다. 그 사이 연세대에서 함께 우승을 일구던 1년 선후배 이상민 서장훈은 대전 현대(현재 전주 KCC)와 청주 SK(현재 서울 SK)에서 챔피언 반지를 꼈고 고려대 라이벌이었던 김병철이나 전희철도 챔피언의 기쁨을 맛봐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지원이 황태자에서 마당쇠로 신분(?)이 격하되자 챔피언 반지는 따라왔다. 팀의 주포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리바운드 싸움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가 하면 자신의 주특기인 3점슛도 넣어주는 전형적인 식스맨으로 변신하면서 2006~2007시즌 우수후보상도 받았다. 올 시즌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득점이 한 자릿수로 내려갔지만 리바운드는 평균 3.06개로 2003~2004시즌 3.50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한 이후 3년 만에 3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노장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우지원은 7차전에서 팀이 51-44로 쫓기던 3쿼터 7분 24초 크리스 버지스의 두 번째 자유투 실패를 공격 리바운드로 연결시켜 3점슛을 터뜨리는 등 손에 땀을 쥐는 박빙의 승부에서 결정타를 종종 날리며 모비스의 10년 만의 통합 우승에 보탬이 됐다.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가 되어 있는 그는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첫 번째 챔피언 반지를 따냈다. 하지만 모비스는 양동근을 비롯해 포워드 김동우가 상무에 입대, 전력의 약화가 예상되는 만큼 그의 풍부한 경험이 더욱 요구된다. 우지원이 다음 시즌 여전히 마당쇠로서 궂은 일을 하며 모비스의 상승세를 이어갈지, 아니면 나이를 잊고 다시 한 번 황태자로 군림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tankpark@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