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을 견뎌 꽃을 피운다는 인동초만큼 부산 KTF를 표현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KTF의 역사는 전신인 광주 나산으로 흘러간다. 프로 원년인 1997시즌 실업농구 약체였던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선수들로 구성됐던 당시 나산은 황유하 감독의 지도 아래 하위권에 머물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정규리그 5위를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1997~1998시즌 7위, 1998~1999시즌 9위에 머물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나산은 모기업의 부도와 함께 인터넷 사업의 활황으로 신흥 기업으로 떠오른 골드뱅크로 매각됐고 2000~2001시즌에는 연고지 광주를 떠나 여수에 정착했다. 골드뱅크에서 코리아텐더로 팀명을 바꾼 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002~2003시즌 이상윤(현재 구리 금호생명 감독) 감독의 지도로 6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삼성에 2연승을 거두고 4강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코리아텐더의 마지막이었고 이상윤 감독은 서울 SK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팀은 KTF에 매각됐고 연고지도 비어있던 부산으로 옮기면서 상무를 이끌던 추일승 감독 체제를 출범시켰다. 첫 해 8위에 머물며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KTF는 2004~2005시즌 4위를 차지하며 2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데 이어 2005~2006시즌에는 원주 TG삼보에서 챔피언에 등극한 경험을 가진 신기성을 데려오면서 2년 연속 정규리그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챔피언결정전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달랐다. 현주엽에 이어 조상현까지 모두 창원 LG에 내줬지만 신기성을 중심으로 송영진, 황진원 등의 풍부한 포워드 라인이 건재했고 포스트 능력이 있는 애런 맥기와 필립 리치가 '트윈 타워' 역할을 해줬다. 특히 리치는 나이젤 딕슨이 갑작스럽게 팀에 합류하지 못한 공백을 잘 메워주면서 팀을 준우승까지 이끌었다. 또 신인 조성민은 LG 이현민에 밀려 정규리그에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거칠 것 없는 플레이로 기여했다. KTF의 코칭스태프들을 면면을 살펴봐도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추일승 감독이 기아자동차 창단 멤버이긴 했지만 농구 명문이라고 할 수 없는 홍익대 출신이었고 프로 출범 후에도 주로 상무에만 머물다가 KTF 창단과 함께 프로 감독의 지휘봉을 잡았다. 또 강병수 코치는 서울 삼성에서 은퇴하긴 했지만 원주 나래(현재 원주 동부) 창단 멤버이고 김용식 코치는 나산 시절부터 계속 인연을 맺어왔다. 10년의 고난을 겪고 있는 '인동초' KTF는 첫 꽃망울을 피우려다 말았다. 앞으로 2년간 팀을 더 이끌 추 감독의 지도력과 시즌 내내 보여준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이 유지된다면 다음 시즌에는 대망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광주 나산 - 광주(여수) 골드뱅크 - 여수 코리아텐더 - 부산 KTF BL 역대 성적표 1997 - 5위 / 6강 플레이오프(대구 동양 1승 4패) 1997~1998 - 7위 / 없음 1998~1999 - 9위 / 없음 1999~2000 - 9위 / 없음 * 골드뱅크에 매각, 광주 골드뱅크로 개명 2000~2001 - 8위 / 없음 * 여수로 연고지 이전 2001~2002 - 7위 / 없음 * 여수 코리아텐더로 개명 2002~2003 - 4위 / 4강 플레이오프(서울 삼성 2승, 대구 동양 3패) 2003~2004 - 8위 / 없음 * KTF에 매각, 부산으로 연고지 이전, 부산 KTF로 개명 2004~2005 - 4위 / 6강 플레이오프(서울 삼성 2패) 2005~2006 - 4위 / 6강 플레이오프(전주 KCC 2패) 2006~2007 - 3위 / 준우승 (안양 KT&G 2승, 창원 LG 3승 1패, 울산 모비스 3승 4패) ※ 정규리그 / 포스트시즌 성적 tankpark@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