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계에는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이와 관련된 책도 출간됐고 실제로 온화한 감독은 맹장들에 비해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 좋으면 꼴찌’가 아니라 ‘사람 좋으면 성적도 난다’로 바꾸어도 무방할 듯 싶다. 이제는 덕장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유일한 초보 사령탑인 현대 유니콘스 김시진(49) 감독도 호성적을 내는 ‘덕장’ 계열에 합류하고 있다. 김 감독은 악조건 속에서도 선수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운용과 팬사랑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끈끈하면서도 안정된 마운드 운용으로 선배 유명 감독들 못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8일 현재 14승 13패로 시즌 초반 꼴찌에서 일약 3위로 도약했다. 시즌 개막전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현대로서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일 한화전은 김시진 감독의 야구를 한 눈에 보여준 경기였다. 이날 현대는 선발 캘러웨이가 2-0으로 앞선 5회초 대량실점(5실점)하며 무너졌으나 구원투수진을 가동, 추가점을 내주지 않고 9회말 마지막 공격서 브룸바의 끝내기 안타로 6-5의 짜릿한 재역전승을 거뒀다. 김시진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밝힌 “9회말까지 포기하지 않는 팀이 되겠다”는 말을 선수들이 실천한 것이다. 현대 선수단은 비록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팀 분위기는 최고다. 사람좋은 감독이 선수들을 믿고 기용하며 편안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 감독도 믿음이 통하지 않으면 변화를 주며 팀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이런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기에 선수와 감독간의 벽이 크지 않다. 지난 6일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김시진 감독의 ‘깜짝 생일파티’를 열고 김 감독의 얼굴에 생크림을 묻히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과시했다. 전임 감독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물론 김 감독이 투수 코치시절부터 오랫동안 선수들에게 맏형처럼 편안하게 지낸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얼굴에 생크림을 뒤집어쓰고도 김 감독은 기분이 좋아 밝게 웃었다. 팬들을 향한 김 감독의 사랑도 지극하다. 김 감독은 8일 한화전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후 10년 동안 자신을 좋아하며 응원하던 한 노신사 팬을 덕아웃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악수를 건네며 반갑게 인사, 이 팬을 감격케 했다. 이 팬은 10년간 김 감독 팬이었지만 김 감독과 감히(?) 악수를 하지 못했다고. 김 감독은 지난해 11월 감독 취임 때부터 “단 한 사람의 팬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팬을 향한 무한사랑을 강조해오고 있다. 현역시절 최고 스타출신인 김 감독은 팬들의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팬을 위한 야구에 앞장서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김 감독의 ‘포기하지 않는 야구, 팬사랑 야구’가 갈수록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sun@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