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간, ‘마녀유희’
OSEN 기자
발행 2007.05.11 09: 01

역시 드라마는 배우들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의 중요성이, 할 말이 너무 많아 실패한 드라마 ‘마녀유희’(김원진 극본, 전기상 연출)를 통해 여실히 증명이 되고 있다.
‘마녀유희’를 보면 우선은 출연 배우들의 화려한 면면에 놀란다. 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청순미를 뽐내고 있는 한가인을 비롯해, 순발력 좋은 배우 재희, 보기만 해도 기분이 흐뭇해지는 귀공자 김정훈, 한결 예뻐져서 돌아온 전혜빈, 그리고 조각 미남 데니스 오까지. 이들이 모두 모여 찍은 포스터 사진은 천상에서 내려온 선남선녀들을 보는 듯 절로 빛이 났다.
그런데 이내 걱정도 따른다. 재료가 너무나 싱싱하고 탐나 도대체 어떻게 음식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재료를 썰고 다져야 하는데 재료 자체가 탐스러워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재료뿐만이 아니다.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음식(이야기) 또한 너무나 많았다. 우선 ‘마녀’ 유희(한가인 분)를 사랑스런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제일 큰 임무였다. 하지만 이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마녀 한가인은 좀처럼 마녀스럽지 못했고 그렇다보니 처음부터 이미 충분히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채무룡(재희 분)은 재능 있는 의학도에서 요리사로 변신해 나가야 했고 유준하(김정훈 분)는 마회장과 마유희 사이에서 얽히고설킨 과거사를 정리해야 했다. 이 설정은 결국 진부한 멜로를 화려한 눈요기로 어떻게든 감춰보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아 ‘요리사 무룡’의 이미지를 심어주기에는 힘에 부쳤다. 채무룡과 유준하는 마유희를 둘러싸고 거친 사랑 싸움까지 해야 했지만 전혀 긴장감이 생기지 않아 고민스러웠다. 조니 크루거(데니스오 분)와 남승미는 이들 틈바구니에서 사랑놀음의 조역자가 되고자 했지만 하루하루 존재감을 확보하는데 급급했다.
또한 무룡의 아버지 채병서(안석환)는 보통 중국집에서 만들어내는 명품 자장면에 혼을 심어야 했고 마유희 회사의 이 팀장(성동일 분)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해서 그 위치에까지 올라갔는가 싶을 정도로 엉뚱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구조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이 많은 ‘빛나는’ 배우들의 얼굴이 화면에 한번씩 나오게 하는 데만도 골머리를 앓을 지경이다. 결국 기댈 곳은 배우들의 ‘개인기’뿐.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그렇게 됐다. 그나마 10% 초반의 두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한가인을 비롯한 매력적인 청춘 남녀들의 얼굴과 그들이 힘겹게 보여주는 잔잔한 재주 덕분이었다.
스토리는 사라지고 배우만 남은 드라마가 됐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모양새다. 그 폐해는 5월 10일 방송된 마지막회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빈약한 스토리 구조는 무룡과 마유희의 키스신으로 처리된 엔딩신조차 시청자들이 납득을 못하는 현실을 낳고 말았다. 그 동안 ‘마녀유희’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마지막회를 보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해피엔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드라마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드라마의 허술한 구조를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반면교사’라 했다. 잘 된 드라마로 감동을 느끼는 것만큼 실패한 드라마를 보고 문제점을 꼬집어 내는 일도 좋은 드라마 시청자가 되는 길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왜 그리 격앙돼 있는지 ‘마녀유희’를 만든 제작 관계자들은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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