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장태유 잘 만났네, ‘역설의 귀재들’
OSEN 기자
발행 2007.05.17 08: 41

가랑비에는 옷 젖는 줄 모른다. 돈이 꼭 이 가랑비를 닮았다. 그런 돈의 속성을 극으로 만들어낸 SBS TV 새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이향희 극본, 장태유 연출)이 가랑비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있다. 히죽히죽 웃는 사이에 현실감이 스멀스멀 파고 들었고 종국에는 눈물까지 핑 돌고 말았다. 돈으로 고통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돈이라는 게 이렇다. 한번 두번 은행의 대출 창구를 찾다가 카드 빚으로, 결국은 사채업자들에게까지 손을 벌리게 된다. 처음부터 곧바로 사채업자에게 가는 법은 없다. 그 과정에서 돈에 대한 감각은 무디어지게 된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쩐의 전쟁’이 그랬다. 5월 16일 밤 겨우 1회가 방송됐지만 그 1회도 하나의 완성된 단편극이었다. 한 자존심 강한 남자 금나라(박신양 분)가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 때문에 몰락해 가는 과정이 눈물겹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돈에 쪼들리는 과정은 솜바지와 같아 야금야금 물기가 스며들 때는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돈으로 인한 부대낌이 벅차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 때부터는 대책이 없다. 한 순간에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게 돈이 만들어내는 올가미다. 빌릴 때는 조금씩 빌리지만 갚을 때는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게 빚의 속성이다. 사실 입에 담기도 뻐근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무거워만 보이지 않게(그러나 끝에는 감당못할 무게에 질려버리지만) 담아낸 두 사람이 있다. ‘쩐의 전쟁’의 주인공 박신양과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는 장태유 PD다. 실실 웃으며 시작했는데 끝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역설’의 귀재들이다. 박신양의 얼굴은 어찌 보면 평범하다. 깔끔한 느낌은 있지만 귀공자도 아니고 조각미남도 아니다. 그 얼굴 자체가 역설이다. 순할 때는 한없이 순한 모습으로 악할 때는 한없이 악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야누스다. ‘쩐의 전쟁’ 1회분에서 박신양은 자존심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 얼굴에서 혼돈에 빠진 모습을 절절히 연기했다. 부동산 개발로 성공한 중학교 동창생 강인혁(장동직 분)을 찾아가 온갖 비굴한 모습으로 돈을 빌려 보지만 자신의 토사물을 먹을 수 있으면 돈을 빌려 주겠다는 인혁의 말에 분노해 그 토사물을 인혁의 얼굴에 뿌리고 만다. 아직까지는 현실의 무게가 자존심까지 꺾지는 못하고 있다. 사채업자 집안의 여자친구(이차연, 김정화 분)에게 “절대로 사채는 쓰지 않겠다”던 금나라는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가 수술비가 없어 병원에서 쫓겨날 처지가 되자 자존심 때문에 떨쳤던 손을 다시 내밀어 이차연의 할머니가 꺼낸 돈 봉투를 받고 차연과의 ‘이별 각서’를 쓴다. 현실 앞에 결국 자존심을 버리는 박신양의 얼굴이다. 아버지가 자살하고 어머니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박신양의 얼굴은 쉴 새 없이 야누스의 두 얼굴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기막힌 현실 앞에 모든 자존심을 다 떨친 그 순간, 분노에 일그러진 한 마리 야수가 그 자리에 있었다. 박신양이 ‘쩐의 전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설, 즉 처음엔 약간은 장난스럽게, 별 것 아닌 것에서 시작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삶을 송두리째 짓눌러 버릴 불행의 덩어리였다는 것을 가랑비에 옷 젖어가듯 보여주는 이 기법은 연출자인 장태유 PD의 특장이기도 하다. 전작인 ‘불량주부’나 ‘101번째 프러포즈’ 모두 주제는 각기 달라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법은 ‘역설’이었다. 직장에서 쫓겨난 한 가장이 가정 주부로 적응해 가는 슬픈 현실을 가벼운 웃음으로 풀어낸 작품이 ‘불량주부’이고 지질이 궁상인 한 남자가 모든 것을 다 갖춘 방송국 아나운서와 사랑을 이룬다는 꿈 같은 이야기가 ‘101번째 프러포즈’이다. 모두 웃음이라는 장치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 소리치고 있는 역설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두 재주꾼이 첫 방송에서 무던히 발을 맞춘 이상, ‘쩐의 전쟁’은 앞으로의 행보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발산할 것으로 보인다. 100c@osen.co.kr 언뜻 외모도 닮아 형제 같은 느낌을 주는 장태유 PD(왼쪽)와 박신양.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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