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세인트피터스버그, 김형태 특파원] 23일(한국시간)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트로피카나필드. 시애틀 매리너스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전이 시작되기 3시간 전 외야 워닝트랙을 뛰어다니는 동양 선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전날 클리블랜드전을 마친 뒤 곧바로 세인트피터스버그로 이동한 백차승(27)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러닝에 열중하던 그는 뜀뛰기를 마친 뒤 약 1시간 가량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덕아웃에 모습을 드러냈다. "패전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밝아서 다행이다"는 말에 그는 "표정이라도 밝아야지요"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날 서재응(30.탬파베이)의 집에서 점심을 함께 한 그는 "탬파베이 원정만 오면 재응이 형이 잘해줘서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고생과 현재 위치,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진솔하게 답변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메이저리그 선발 자리를 꿰찬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 있으면서 배운 게 많았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의 고생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점이 가장 도움이 됐는가. ▲마이너리그 생활이란 게 사실 고생이지 않나. 팔꿈치 수술도 하고 재활도 하면서 좌절도 참 많이 했다. 그런데 그걸 극복하고 일어선 점에서 나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진다. -경기를 지켜보면 많은 부분에서 발전이 있었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어떤 점이 향상됐다고 생각하는가. ▲처음 미국에 와서 습득한 체인지업이 가장 나아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내 것이 돼 가고 있다. 좌타자를 상대할 때 슬라이더를 던지는 요령도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슬라이더를 그다지 던지지 않았다. 구질이 단조로웠는데 지금은 4가지 구질(직구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을 자유자재로 던진다. 특히 왼손타자가 나왔을 때 슬라이더는 몸쪽과 바깥쪽(백도어 슬라이더)을 구분하지 않고 던질 수 있게 됐다. -변화구 제구력이 정말 좋다. ▲지금은 공 던지는 게 편하다. 이전에는 주자가 나가면 나 스스로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이 무대가 메이저리그이니 뭘 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기 승격된 뒤부터는 모든 게 편안하다. 맞을 때 맞더라도 내가 의도했던 공을 던진다. -부상자명단(DL)에 올라 있는 제프 위버가 시애틀에 오지 않았다면 시즌 초부터 5선발을 맡았을 텐데. ▲야구도 비즈니스다. 팀 사정상 베테랑 투수가 필요해서 영입했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구단에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었던 건 사실이다. -위버가 부진하면서 상대적으로 호투가 돋보이고 있다. 팀 내에서 자신을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지지는 않았는가. ▲'팀이 드디어 나를 믿는구나'하는 느낌은 아직 없다. 다만 코칭스태프로부터 "지금 아주 좋으니까 이 상태로만 던져주면 된다"는 격려는 받는다. 팀 동료들도 나를 잘 챙겨준다. -디트로이트전 완투승을 거둔 뒤 기분이 어땠는가. 완투승 뒤 표정은 생각만큼 기쁨이 충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해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가 쇼맨십이 없다보니 크게 내색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당시 경기 후 라파엘 차베스 투수코치가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의 투구였다"고 극찬했다. ▲나와는 서로 잘 아는 코치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고생한 분이다. 싱글A 시절인 2000년부터 2001년 2003년 2004년 시즌을 함께 보냈다. 계속 투수코치로 재직하면서 나를 지도해줬다. 그 분은 2005년까지 트리플A에 머물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투수코치로 승격했다. -한때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은 이기려는 의지가 없는 팀"이라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치로는 좋은 선수다. 클럽하우스에선 조용하지만 필드에만 나가면 자기 몫을 확실하게 해준다. 오늘 상대하는 탬파베이 같은 팀에 비해서는 우리 팀이 아무래도 연봉총액이나 이런 면에서 차이가 나지 않은가. 그런데 성적이 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팀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이기려는 의욕은 당연히 있다. 이치로는 그런 점에서 자신이 느꼈던 안타까운 점을 밝힌 게 아닌가 싶다. -위버의 복귀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 풀타임 선발 자리를 굳힌 건 아닌데 다시 경쟁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내게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다른 부분은 코칭스태프가 결정할 부분이다. 내려가라면 짐싸서 다시 갈 수밖에 없다. -만약 다시 마이너리그 강등 통보를 받을 경우 다른 팀에서 기회를 잡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지금 몸담고 있는 팀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2005년 시즌 뒤 팀에서 방출됐을 때 다른 팀을 알아봤지만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시애틀 트리플A로 복귀했다. -마이너리그 옵션은 얼마나 남았는가.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부터는 팀에서 나를 강등조치할 경우 트레이드나 방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올해 마음에 새겨두고 있는 목표가 궁금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발투수로서 10승 이상을 달성하고 싶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