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세인트피터스버그, 김형태 특파원]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백차승(27.시애틀 매리너스)은 미국 시민권자다. '야구 미아'로 전락할 위기에서 택한 마지막 수단은 국적 변경이었다. 본인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23일(한국시간) 트로피카나필드에서 만난 백차승은 이 부분을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 가슴 속에 담아뒀던 "팬들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며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먼저 국적 변경 시점을 묻자 그는 "2005년 4월 쯤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시민권을 얻으면서 한국 국적은 자연히 말소됐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이미 병무청 확인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내용이다. 백차승은 지난 1998년 9월 시애틀에 입단했지만 취업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한국으로 유턴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택한 해결책은 미국 국적 신청이었다. 하지만 백차승은 국적을 변경하면서까지 야구를 계속해야 했던 자신의 처지에 회한이 적지 않은 듯했다. 네티즌을 비롯한 팬들의 비난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팬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해가 되는 일을 한 건 아니다. 다만 같은 한국인으로서 국적을 바꿨다는 데에 팬들과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팬들도 욕을 많이 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야구를 해야 하는지. 내 인생에 있어 참으로 아쉬웠던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18세 어린 나이에 선택한 미국무대 진출. 국내에서 냉대와 미국에서 악전고투. 무려 7년간 가족 얼굴을 볼 수 없었던 20대 청년의 외로움. 선수생명을 건 팔꿈치인대 접합수술(토미 존 수술)과 고통스러운 재활. 메이저리그 승격과 강등. 그리고 방출과 재합류. 백차승은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그처럼 인생의 쓴맛을 두루 본 사람도 흔치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백차승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애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으로 묵묵히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재 해외파 투수 가운데 가장 구위가 좋은 투수로 백차승을 꼽는다. 시애틀의 붙박이 선발투수로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고 싶다고 희망을 밝히는 백차승. 과거의 좌절을 뒤로 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그에게 희망찬 햇살이 비칠지 주목된다. 이번 인터뷰에서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이 있다. 보통 한국인들이 국적을 변경할 경우 성은 그대로 쓰지만 이름을 미국식으로 변경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다. 아시아인들의 이름 발음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미국인들과 동질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케빈' '데이빗' '다이애나' 등 흔한 이름을 사용한다. 하지만 백차승은 시민권 취득 당시 자신의 이름을 '백차승'이라고 신고했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 돌고 있는 '백차승의 미국명은 스티브 유 또는 찰스 유'라는 얘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악소문에 불과하다. workhors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