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방송에서 하는 가벼운 말투는 이내 유행어가 되고 무심결에 보여주는 행동은 쉬 생활양식이 된다. 방송이 많은 사회단체와 언론, 내지는 시청자들로부터 감시를 받고 잔소리를 듣는 이유도 그러한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진리 속에 최근 방송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된 몇 가지 사례가 줄줄이 나와 눈길을 끈다. 방송에 종사하는 방송인 뿐만 아니라 드라마 제작사에 이르기까지 그 사연과 형태도 다양하다. SBS 라디오 ‘SBS 전망대’를 진행하는 백지연 앵커는 최근 공인의 자세를 지키기 위해 출연료가 수억 원에 이르는 CF를 마다했다. 아니, CF를 찍기로는 했다. 그러나 촬영 도중 양심에 어긋나는 카피를 말해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그 자리에서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백지연 앵커는 최근 국내 굴지의 기업 광고 제의를 받고 지방에 있는 촬영장까지 갔다. 그런데 촬영을 준비하던 도중 “저도 이 상품을 구입했습니다”라는 카피가 걸렸다. 실제 그 상품을 샀을 리가 없는 백 앵커는 “내가 그 상품을 샀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데 샀다고 말하는 건 나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고 게다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신뢰성에 문제가 된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광고주와 모델 사이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백 앵커는 거액의 계약금을 포기하고 미련 없이 촬영장을 떠났다.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 제작사가 유명 일본계 대부업체의 PPL을 정중히 거절했다는 소식도 새겨들을 만하다. 그 동안 그늘에 묻혀있던 사채업자들의 세계를 드라마로 만든다는 이야기는 대부업체들로서는 귀가 솔깃해지는 이슈다. 드라마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제작사 처지에서도 5억 원에 이르는 PPL 제의는 구미에 당기는 소리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채의 위험성을 강조해야 할 드라마가 ‘쩐의 전쟁’인데 그런 작품에서 대부업체의 제작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제작사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다 사회적 책임을 따랐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옳았고 드라마의 ‘대박’과 함께 사회적 책임까지 강조된 좋은 사례로 남게 됐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상업광고 출연에 일침을 가한 중견 아나운서도 있다. KBS 아나운서 차장을 맡고 있는 강성곤 아나운서가 주인공이다. 강 아나운서는 지난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아나운서 세미나에서 “아나운서가 예능인이 되고 프리랜서가 되어도 자존심과 자존감은 지켜야 한다. 방송의 역할과 기능, 책임성을 몸에 익혔던 그들이 상업광고에 출연해 직접적으로 상품을 언급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광고를 하더라도 공익광고나 공기업 광고 등 의미 있는 광고를 골라서 하라는 쓴소리다. 얼마 전 이런 통계도 있었다.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53.1%가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방송인 뿐만 아니라 연예인까지도 자신의 신뢰도는 스스로 챙겨야 프로답다. 100c@osen.co.kr 공인의 자세를 지키기 위해 거액의 CF를 마다한 백지연(왼쪽)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대부업체의 PPL을 거부한 ‘쩐의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