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인기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이향희 극본, 장태유 연출)이 엄청난 진폭의 강약 조절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드라마였더라면 자칫 산만하다는 핀잔을 들었을 정도다. 이런 고난이도의 기법이 통할 수 있었던 배경의 중심에는 물론 명배우 박신양이 서 있다. ‘쩐의 전쟁’은 한 회 한 회가 코믹과 느와르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7일 방송분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악덕 사채업자가 마동포(이원종 분)라는 사실을 안 금나라(박신양 분)는 거의 반 실성한 사람이 되어 화면을 긴장감으로 몰아 넣었다. 사우나를 즐기고 있던 마동포를 찾아가 골프채를 휘두르는가 하면 아버지의 유골 가루가 뿌려진 강물 속에 첨벙첨벙 뛰어 들기도 한다. 이 순간 금나라의 모습은 절규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런 긴장감도 잠시, 금나라는 이내 예의 장난기 어린 얼굴로 돌아와 있다. 골목길 친구가 된 애완견을 상대로 말동무를 삼는가 하면, 다시 마동포의 사무실로 돌아간 금나라의 얼굴엔 여유가 되살아 났다. 마동포와 화해를 하고 각서를 써주는 과정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과장된 웃음 소리가 가득하다. 권투 도장을 운영하는 부실채무자를 찾아가 돈을 받아낼 때는 마동포의 비밀을 알기 전 모습 그대로다. 금나라의 이런 모습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금나라에 대한 인물 설명은 한 마디로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그의 반쪽은 피도 눈물도 없지만 또 다른 반쪽은 정의감에 불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그 바탕에는 돈에 대한 복수,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짙게 깔려 있다. 이런 복잡한 캐릭터는 웬만해서는 소화해내기가 어렵다. 탄탄한 연기 공력을 지닌 배우가 아니면 자칫 캐릭터의 혼란이라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쉽다. 두 상반된 성격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서는 대단한 수준의 연기 몰입을 요구하기도 한다. 금나라의 맞수 하우성 역을 연기하고 있는 신동욱은 이런 박신양을 두고 “화면에서 보여지는 것 보다 실제가 더 시원스럽고 실감난다”고 표현했다. 화면의 트릭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어떤 제작진은 “캐릭터에 깊이 몰입할 때는 옆에 다가가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말한다. 목욕탕에서 마동포를 쫓아 골프채를 휘두를 때는 몰입이 지나쳐 목욕탕의 타일을 파손해 제작사에서 손해배상을 해줬다는 뒷이야기도 이야기도 있다. 사채 빚이라는 별로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쩐의 전쟁’이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비결, 박신양과 같은 진짜 배우들의 명연기가 뒷받침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100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