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독해". 언젠가 서정환 KIA 감독은 "김재박 감독 못지 않아. 4점차로 앞서 있어도 무조건 번트를 댄다니까"라며 웃은 적이 있다. 올해 지휘봉을 잡고 현대의 강세를 이끌고 있는 김시진(50) 현대 감독을 이르는 말이었다. 요즘 상승곡선을 긋고 있는 현대 강세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었다. 실제로 팀 기록을 찾아보니 현대는 8개팀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모두 64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물론 이 기록은 희생번트를 시도한 숫자가 아니다. 성공시킨 숫자이니 실제 번트수와는 차이가 있다. 아무튼 성공 숫자를 비교해보면 김시진 감독은 독보적이다. 롯데 강병철 감독이 61개로 뒤를 잇고 있다. 그 다음은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LG로 모두 48번을 성공시켰다. 지키는 야구를 하는 삼성은 42회로 KIA와 공동 4위. 쌍방울 감독 시절인 96년 당시 연간 최다번트 신기록(143개)을 세웠던 김성근 SK 감독은 의외로 40개를 성공시켜 6위에 랭크됐다. 선굵은 야구를 하는 두산과 한화는 각각 37개와 33개로 7위와 8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의외로 많았다. 현대와 한화는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차이를 보여준다. 번트는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가장 공격적인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주자를 가장 안정적으로 득점권에 진루시킨 뒤 득점 확율을 최대한 높이기 때문이다. 한 점 야구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스몰볼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김재박 감독은 지난해 현대 감독시절 157개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켜 연간 최다기록을 수립했다. 그만큼 번트야구를 선호했다. 번트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많이 갖고 있다. 월등히 앞선 경기 후반에도 번트를 대는 바람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김재박 감독의 지휘봉을 이어받은 김시진 감독은 전임자 못지 않은 번트야구의 애용자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전임 감독이 세운 번트기록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에는 팀타율 1위는 물론 희생번트 1위에도 있지 않을까. 올해 프로야구에 또 한 명의 번트 강자가 나타난 것 같다. sunny@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