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처럼 뽀얀 살결’ ‘카메라 감독을 제외한 스태프도 현장 출입 통제’ ‘일순간 호흡을 멈춰버리게 하는 숨막히는 아름다움’…. 한 때 새 드라마를 시작하다 보면 으레 한두 번쯤은 나오곤 했던 홍보문구들이다. 모두가 주연 여배우의 노출을 묘사하는 상투어들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대개 목욕신이다. 드라마 제작자들은 어떻게 하면 여배우를 아름답게, 고혹적으로 벗길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목욕탕에 붉은 장미꽃잎을 뿌리기도 하고 온갖 화려한 양초로 장식도 해 봤다. 사극에서는 계곡물에 뛰어드는가 하면, 커다란 나무 목욕통을 준비하기도 했다. 새 드라마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여배우의 어깨선 노출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여배우의 목욕신은 여전히 효과적인 ‘바람잡이’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그 빈도가 예전만 못하다. 대신 그 자리를 신나는 춤과 노래, 그리고 다른 프로그램의 패러디가 채우고 있다. 지난 6월 25일 시작한 SBS TV 새 월화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2차례나 등장했다. 첫 회에서 주인공 하희라는 야간 대리운전을 하면서 손님을 위해 장윤정의 ‘어머나’를 불렀다. 아들이 박사학위를 따 기분이 좋다는 손님을 축하해 준다는 명목이었다. 2회에서 유준상은 노래방에서 ‘찰랑찰랑’을 개사한 ‘딸랑딸랑’을 불렀다. 중학교 기간제 교사로 취직을 의뢰하고 있는 유준상이 재단 이사장 앞에서 아양을 떠는 대목이었다. SBS TV 인기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에서도 노래방 장면은 어김없이 나왔다. 주인공 박신양이 조직폭력배 두목 앞에서 예쁨을 받는 신이 필요했는데 당시 박신양은 ‘파워레인저’를 부르며 테이블 위를 펄쩍펄쩍 뛰어 다녔다. 댄스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경성스캔들’에서는 강지환과 한고은이 신나는 스윙댄스로 시청자들 눈에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수십 명의 댄서가 동원된 군무도 선을 보여 눈요깃거리가 됐다. 남녀 사이의 열정을 표현하는 데는 살사댄스가 단골로 쓰이고 있다. SBS 금요드라마 ‘8월에 내리는 눈’에서는 신예 이연주가 살사댄스 전문가로 등장한다. 이런 이연주를 유혹하기 위해 남자 주인공 조동혁도 덩달아 살사를 배우게 된다. SBS 주말 특별기획 ‘불량커플’에서는 개그맨 춤꾼 김기수가 등장해 주인공 신은경과 함께 멋진 살사댄스를 선보였다. 또 ‘쩐의 전쟁’에서는 50억 원을 손에 넣은 박신양의 상상신에 주변의 모든 아는 사람들과 신나는 댄스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패러디신도 약방의 감초가 됐다.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는 첫 장면이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로 시작됐다. 불을 끄고 어머니는 떡을 썰고 아들은 글을 쓰는 바로 그 장면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인기 개그코너 ‘사모님’도 패러디 했다. 돈은 많으나 든 것이 없는 여자 미경으로 나오는 정선경이 사회참여시라고 써낸 작품이 바로 ‘운전해 김기사’였다.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춤과 노래는 여배우의 목욕신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재료로는 효과 만점이다. 요즘처럼 멜로 드라마가 퇴조한 상황에서 억지로 목욕신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적절한 대안이 바로 춤과 노래다. 물론 이 ‘바람잡이’도 금세 유행이 지나가 썰렁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다. 100c@osen.co.kr 위에서부터 노래 또는 댄스 장면이 삽입된 ‘경성스캔들’ ‘쩐의 전쟁’ ‘8월에 내리는 눈’ ‘강남엄마 따라잡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