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작가 전성시대다. 톱스타가 출연하기만 하면 무조건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시절은 이미 지나간 옛 말. 최근 한국 드라마 시청률은 톱스타나 스타 연출가의 힘보다 작가들의 손끝에서 결정되고 있다. 톱스타를 기용해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겠다는 전략은 한때 성공하는 드라마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조건이다. 하지만 요즘 방송가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스타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고 스토리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청률 보증수표라고 불리던 톱스타들도 진부한 이야기 전개와 억지스런 상황 설정 앞에서는 전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례로 고소영이 출연한 SBS TV ‘푸른 물고기’는 4%대의 시청률로 종영했고, 같은 방송사 ‘사랑에 미치다’의 이미연, 그리고 MBC TV ‘90일 사랑할 시간’의 김하늘은 10% 미만의 시청률을 거두며 조용히 퇴장했다. 또 SBS ‘천국보다 낯선’의 이성재와 SBS ‘무적의 낙하산 요원’의 에릭, KBS2 TV ‘눈의 여왕’의 현빈 등도 이름값이 무색한 결과에 눈물지어야 했다. 현재 강수연이 출연하고 있는 MBC ‘문희’도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스타 연출가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작의 성공을 잇지 못하고 실패의 쓴잔을 마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MBC ‘궁S’ 황인뢰, ‘케세라세라’의 정윤철, SBS‘청춘을 덫’을 연출한 정세호 감독의 ‘사랑하는 사람아’ 등 연출의 대가로 이름난 이들도 명성에 어울리지 않은 시청률 10% 미만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기 작가들은 톱스타의 유무에 상관없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뒀다. 최근 종영한 김수현 작가의 SBS ‘내 남자의 여자’가 대표적 예다. 배우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완벽한 대본과 대사를 집필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MBC ‘고맙습니다’,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 ‘상두야 학교 가자’ 의 이경희 작가도 대표적인 스타 작가라로 말할 수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후속으로 방송된 '이 죽일 놈의 사랑'이 비슷한 소재와 분위기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MBC '고맙습니다'로 보기좋게 성공,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이경희 작가 자신에게 가장 고마운 드라마가 됐다. 임성한 작가가 집필하는 드라마는 출연하면 무조건 뜬다는 탓에 신인들의 등용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MBC ‘인어아가씨’ 에서는 장서희를,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호칭을 얻었던 SBS‘하늘이시여’에서는 시청률 30% 의 고공행진으로 신인이던 윤정희를 하루 아침에 스타로 만들어 냈다. 곧 MBC에서 방영될 ‘아현동 마님’에서도 신인 김경아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스타가 출연해도 드라마가 잘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신인을 쓰고, 또 그 신인을 스타로 만드니 그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다. 앞으로 방영될 MBC '아현동 마님'은 작가의 거부로 제작발표회까지 미뤄진 상황. 이들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이제 스타 파워를 넘어서 작가 파워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역량과 작품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드러난 것. 드라마의 기획과 제작의 공정에서 가장 앞서는 것은 스타가 아니라 작가의 선정이며, 드라마에서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작가라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답이 됐다. MBC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PD가 드라마 전반에 관한 모든 부분에 결정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작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PD는 작가에게 군소리도 못할 정도다. 편당 지급되는 돈을 봐도 어마어마한 액수다”며 이 같은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스타도 연출가도 드라마의 성공을 답보할 수 없는 시점에서 심도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시청자의 신뢰를 얻고 있는 작가야말로 가장 믿을 수 있는 흥행보증수표 인셈. 이런 이유로 이제 한국드라마 시장은 작가파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yu@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