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극장가에 '일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일본영화 고정팬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개봉 편수와 관객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감각적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4만명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5센티미터'도 몇개 안되는 개봉관으로 금세 1만명을 불러모았다. 실사영화로는 하세가와 쿄코 등이 주연한 '그녀의 은밀한 사랑일기'와 아오이 유우의 '변신'이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계 일류 붐의 선두 주자는 이누도 잇신 감독.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주목을 받더니 후속작 '메종 드 히미코'로 국내 시장에서 자리를 굳혔다. 게이들이 모여사는 한 호텔을 무대로 펼쳐지는 감동 드라마 '메종 드 히미코'는 올초 소규모 개봉에도 불구하고 10만 관객을 넘어서 영화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 배두나를 캐스팅한 '린다 린다 린다'의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있고 '러브레터' 하나와 앨리스'의 이와이 슌지는 진출 역사가 깊다. 배우로는 '메종 드 히미코'의 오다기리 조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일본 내 재일교포들의 애환을 그린 '박치기'에도 출연했던 그는 잘생긴 외모에 그보다 출중한 연기력까지 갖췄다. 그의 최신작 '유레루'는 장기간 단관 상영을 계속하면서 휴일 등에는 매진 사태를 빚고 있다. 가을로'의 엄지원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 때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오다기리 조를 꼽으며 "한국 여배우라면 누구나 오다기리를 좋아할 것"이라고 강력히 추천했을 정도다. 이밖에 일류로 칭할만한 남자배우로는 한국통으로 알려진 '일본침몰'의 구사나기 쓰요시, '워터 보이즈' '부드러운 생활'의 츠마부키 사토시를 들수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본의 톱스타 쓰요시는 한국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 특별출연하며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일본 여배우 층은 폭넓게 퍼져있다. '스윙 걸즈'의 우에노 주리가 있고 '박치기'에서 한복 차림의 아리따운 재일교포 여고생을 연기한 사와지리 에리카도 다수의 팬클럽을 확보했다. 아오이 유우, 미야자키 아오이, 시바사키 고 등도 인기 상승세다.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 등 몇몇 이외에는 새로운 스타 배출과 세대교체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한류와 대조적으로 일류의 파상공세는 지속적이다. 아직까지 한국내 주류 시장에서의 일본영화 영향력은 미미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만이 개봉 때마다 몇백만 관객을 돌파할 뿐이다. 실사 영화에서는 1999년 겨울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가 당시로는 파격적인 서울 67만명, 전국 140만명을 끌어모은 뒤로 별다른 흥행작을 내지 못했다. 올 여름 블록버스터 '일본침몰'이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반일감정 역풍을 맞고 절벽에서 추락했다. 현재 일본영화 최고 흥행기록은 미야자키의 근작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보유한 300만명. 그러나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법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유레루' 등 마케팅 비용을 거의 들이지않은 인디영화의 소규모 개봉에도 꾸준히 5만~10만명 관객이 꾸준히 몰리면서 전체적인 일본영화 점유율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다. 작품별 관객 동원 숫자는 낮아도 개봉작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 이에 비해 지난 2~3년 동안 한국영화 판매수입의 '봉' 노릇을 했던 일본 시장은 최근 자금줄을 꽉 조이고 있다. '한류'에 기대를 걸고 몇백만 달러씩의 선금을 들여 일본으로 수입했던 한국영화들이 대부분 손해를 면치 못해서다. 한국영화 역대 최고흥행 기록을 세운 '괴물'조차 일본 개봉에서는 맥을 못추고 무너졌다.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필름마켓에서 한국영화를 사려는 일본 배급업자들의 입질은 최근 실종 상태다. 한국이 '한류' 열기의 자아도취로 황홀경에 빠져 지내는 새, 엄청난 양과 다양한 종류의 문화 콘텐트를 갖춘 '일류'가 조금씩 조금씩 한국땅을 적시고 있다. 그 선봉에 선 것이 청춘 스타를 앞세운 일본의 인디영화인 셈이다. mcgwire@osen.co.kr 영화 '변신'과 '메종 드 히미코' 스틸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