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 SK 구원투수 조웅천이 경기 중에 외야수로 전환해 주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고교야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나 프로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모습이었다. 지난 8일 수원구장 현대와 KIA전서도 조웅천 사례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연장 10회초 수비에 들어간 현대는 내야수들의 ‘보직파괴’를 대대적으로 행했다. 조웅천 만큼의 파격적인 보직 전환은 아니었지만 선수 당사자들에게는 ‘첫 경험’이었다. 1-2로 뒤진 9회말 마지막 공격서 동점을 만들기 위해 대타 물량공세를 편 현대 벤치는 마침내 2-2 동점을 이루는데는 성공했으나 이후가 문제였다. 내야 백업요원을 모두 소진한 탓에 유격수 자리가 비게 됐다. 기존 유격수 요원들인 지석훈, 서한규에 차화준, 김일경 등이 모두 라인업에서 빠진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 벤치는 포지션 대이동을 단행해야 했다. 먼저 1루를 보던 ‘만능 플레이어’ 이택근을 3루수로 전격 이동하고 3루였던 정성훈을 유격수로 돌렸다. 그리고 9회 대타로 나섰던 포수 강귀태를 이택근이 빠진 1루에 기용했다. 원래 포수로 프로에 입단했던 이택근은 이날 처음으로 3루를 맡게 됐고 포수 강귀태도 1루를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이택근은 지난해부터 주로 외야수로 출장해오다 최근 1루수로도 나서고 있었으나 3루수는 처음이었다. 지난해 전지훈련 때까지 3루 훈련을 받고 시범경기에 출장한 적은 있지만 공식경기에 3루수로 나선 것은 첫 번째였다. 3루수 정성훈도 유격수를 맡기는 오랜만의 일이었다. 정성훈은 KIA 신인이던 1999년 잠깐 유격수를 본 적이 있을 뿐 줄곧 3루수로 뛰었다. 궁여지책으로 내야수들의 포지션 이동을 단행한 현대 벤치로서는 불안불안한 상태에서 연장전을 치렀다. 특히 3루가 처음인 이택근은 상대도 이점을 간파, 집중 공략의 대상이 됐다. 발빠른 KIA 타자들은 기습번트 등을 시도하며 이택근을 시험했다. 결국 이택근은 2번의 수비에서 한 번 실책을 범했다. 포구와 송구 동작 모두 어설펐다. 이택근은 속으로 '공아 제발 나한테 오지마라'고 되뇌었을 것이다. 그래도 큰 과오없이 임무를 수행, 현대 벤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비록 이날 경기서 현대는 패했지만 선수들의 다양한 능력을 발견한 하루였다. sun@osen.co.kr 이택근-강귀태=현대 유니콘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