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이순재(72)와 신구(71)가 브라운관의 스타 라이벌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70대의 두 연기자가 요즘 잘 나가는 젊은 스타들을 밀어낸 채 남녀노소 구분할 것없이 폭 넓은 고정팬을 확보했다. 전성기를 방불케하는, 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이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는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온 연기의 깊은 맛이다. 1956년 드라마로 데뷔한 이순재, 연기 경력이 벌써 53년을 넘어간다. 한 살 어린 신구는 이보다 훨씬 늦게 1962년 연극 ‘소’로 무대를 처음 밟았지만 짧아서 45년이다. 긴 인생 만큼 긴 연기 생활 속에서 이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리 주변의 온갖 캐릭터를 온 몸으로 표현했다. 두 원로의 연기에서 잘 숙성시킨 시골 할머니 장맛이 느껴지는 게 그래서다. 둘째는 이미지 변신이다. TV 탤런트 사회에서 왕고참이자 대선배로 늘 쓴 소리를 던지고 있는 이순재는 시청자에게 엄하고 고집스런 성격으로 다가왔었다. 나이 들어 주로 완고한 대가족 가장 역할을 맡다보니 아예 근엄한 이미지가 굳어졌던 셈이다. 이를 한방에 깨트린 게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돌팔이 한방병원 원장인 그는 여전히 대가족을 거느린 가장으로 등장했다. 나이 든 아내를 무시하고 자식 손자들을 쥐잡듯 잡는 모습이 여전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를 덧붙였다. 인간적 약점이 상암구장 잔디처럼 무성한 인물로 실수 만발 캐릭터다. 가족 몰래 인터넷으로 야동을 보다 들켜서 ‘야동순재’ 애칭을 얻고, 걸핏하면 자빠지고 넘어져서 자신의 권위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 시청자들은 거침없이 망가져 준 이순재에게 열렬한 지지와 웃음으로 답장을 보냈다. 젊은 층은 곧잘 무너져내리는 완벽주의 기성세대인 그에게서 후련함을 느꼈고, 중 장년층은 빠르게 붕괴되는 가족 구성과 질서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수 있는 가능성을 지켜봤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가장 시청자를 웃겼던 캐릭터는 바로 이순재다. 신구는 “니들이 게맛을 알아?” CF 한편으로 기존의 껍질을 털어내고 신선한 분위기로 시청자를 다시 만났다. 그의 표정 하나, 대사 한토막은 보고 듣는 이들에게 농축된 엑기스마냥 흡수력이 강하다. 사람들은 이를 연기력이라고 부른다. 신구의 연기력은 최상급이고 이는 경력이 보증한다. MBC ‘고맙습니다’ 치매 노인으로 감동 연기를 선사하더니 SBS로 자리를 옮겨 ‘쩐의 전쟁’에서 사채의 달인으로 시청률을 휘저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구는 캐릭터 영역 파괴에 일찌감치 성공한 인물이다. 이순재보다 훨씬 빨리 2001년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수 없다’로 코믹 연기에 한쪽 발을 들여놨고 성공을 거뒀다. 2000년대 중반에 다시 톱스타로 자리 한 이순재와 신구. 인품과 연기력 갖춘 원로로 존경받던 이들이 이제 대중의 인기를 놓고 화려한 대결을 펼친다. 엄청난 반향 속에 막을 내린 ‘거침없이 하이킥’ 바로 다음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에 신구가 나서기 때문이다. 출연작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비교는 곧 이어질 게 분명하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원로의 연기 대결은 새삼 시청자들에게 어머님의 밥상 같이 따뜻한 온기와 맛을 건네주고 있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