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라. 최근 국내 중소 영화사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영화 대작 틈새에 끼어 개봉 날짜를 잡느라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올해 한국영화 시장은 극도로 침체된 상황이다. 지난해 묻지마 투자와 공급 과잉으로 1000억원 넘게 손해를 본 영화계는 돈줄이 말라붙었다. 대작과 부딪혀서 자칫 쪽박이라도 차면 당분간 재기를 꿈꾸기 힘들 분위기다. 제작비 100억원을 쏟아붓고 송혜교 유지태 등 A급 스타를 캐스팅한 ‘황진이’조차도 블록버스터 열기에 묻혀버렸다. 그러니 중소 영화 제작자들은 잡았던 개봉일을 당겼다 놨다 하면서 조바심이 더하고 있다. 최근 한 공포영화는 언론에 알렸던 이달 중순의 시사회 일정을 부랴부랴 취소했다. ‘여러 사정상 8월께로 개봉일을 미뤘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날짜는 미정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 영화의 돌연한 개봉 연기가 한국영화 대작인 ‘화려한 휴가’와 ‘디 워’가 7월말에서 8월초 사이 연달아 막을 올리는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도 대작 눈치를 보다가 아예 올 가을로 개봉을 미룬 영화들이 한 두 편이 아니다. 촬영 일정과 후반 작업 지연 등을 이유로 내걸었지만 속사정은 뻔하다. 스크린 확보도 어려운 블록버스터 시즌에 개봉하기 보다 한국영화 팬들이 증가하는 추석 대목을 노려보겠다는 계산이다. 이 같은 충무로의 눈치 보기로 인해 올 상반기 극장가에서는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영화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진의 스크린 데뷔작인 코미디 ‘못말리는 결혼’이 ‘스파이더맨 3’와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초강수를 둬서 20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게 사례로 꼽힐 정도다. 대신에 여름철 공포영화 개봉은 눈에 띄게 늘었다. 블록버스터나 대작을 피해갈수 있는 확실한 틈새 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황정민의 ‘검은집’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고, ‘기담’ ‘해부학교실’ ‘므이’ ‘두 사람이다’ ‘헨젤과 그레텔’ ‘전설의 고향’ 등 다수가 개봉했거나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