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아시안컵, 베어벡에 어떤 운명을 안길까
OSEN 기자
발행 2007.07.19 11: 37

한국이 천신만고 끝에 8강에 오른 아시아축구선수권 대회(아시안컵)는 사실 한국팀과 악연이 깊은 대회다. 1956년과 60년 1, 2회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이래 한국은 준우승 3번에 그쳤을 뿐 나머지 대회서는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64년 3회 대회때는 올림픽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2진을 파견했고, 92년 대회 지역예선에는 탈아시아를 명분으로 실업선발팀을 내보냈다가 예선탈락하는 망신을 사기도 했다. 일본은 이 대회 첫 우승을 시작으로 2000년과 2004년 우승을 차지, 극동세가 중동세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시안컵은 90년대 이후엔 한국 감독들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았다. 박종환 감독은 96년 대회 8강전서 이란에 2-6으로 참패하는 바람에 대망의 월드컵 대표팀 감독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 경기서 한국이 참패한 뒤박종환 감독의 독선에 대해 선수들이 반발, 고의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2000년 대회는 허정무 감독에게 불운을 안겼다. 당시 허 감독은 이영표 박진섭 박지성 이천수 설기현 등 20대 초반의 올림픽대표팀 멤버들을 대표팀의 세대교체 멤버로 대거 실험했고, 경기 내용에서도 절제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4강전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하는 바람에 국내 언론들 사이에선 외국 감독 대세론이 확산돼 결국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대권을 넘기고 말았다. 2004년 대회서는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8강전서 이란에 패했지만 사실상의 데뷔 무대였다는 점에서 경질을 면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렇다 할 특징을 보여주지 못해 월드컵 예선을 통과했음에도 평범한 감독으로 낙인 찍힌 채 한국을 떠나야 했다. 아시안컵은 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려 감독들에게 늘 부담이 컸다. 두 대회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경질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대회부터 올림픽 전 해에 열리게 됨으로써 그러한 부담은 덜게 됐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선 단명을 재촉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 1992년부터 전임감독제를 도입해온 한국대표팀의 경우 대부분 월드컵 이후 올림픽까지 2년의 임기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2003년 이후에는 월드컵 예선을 포함한 중요 대회 대부분이 감독의 능력을 평가하는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03년 이후 한국대표팀 감독의 수명은 평균 1년에 불과하다. 지난해 월드컵 후 딕 아드보카트 감독으로부터 사령탑을 물려 받은 핌 베어벡 감독은 히딩크 감독 밑에서 2년 여 간 코치 생활을 했고, 한국축구와 한국문화를 잘 이해한다는 점 때문에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베어벡 축구는 이렇다 할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비록 주전이 대거 빠졌다고는 하나 이번 대회가 끝나면 그의 축구는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란과의 8강전을 남겨둔 아시안컵은 베어벡 감독을 혹독히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usk0503@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