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 단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감동 이벤트다. 그러다 보니 갖가지 아이디어가 총동원되는 경연장이기도 하다. 촛불을 켜고 장미꽃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고무풍선과 케이크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품이다. 그런데 이런 프러포즈도 있었다. 이름하여 ‘삭발 진상’. 머리카락을 박박 밀고 프러포즈를 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긴 머리카락으로 숭고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우리 민족의 뿌리깊은 정서이다.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를 삼아 지아비에게 지어 올린다는 간절한 마음은 고대 시가에도 등장할 만큼 이성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굳이 그런 생각까지는 아니었겠지만 SBS 주말 스페셜드라마 ‘불량커플’을 만든 이명우 PD가 택한 프러포즈는 어쨌든 ‘삭발 진상’이었다. 이 PD는 어깨까지 내려오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깨끗이 밀어버리는 방법으로 진실된 사랑을 노래했다. 이명우 PD의 아내는 같은 방송사에 근무하는 박은경 아나운서로 둘은 2002년 1월 결혼했다. 이명우 PD는 23일 저녁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불량커플’ 종방연에서 프러포즈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다. 이 PD는 “남들이 흔히 하는 것은 싫었고 뭔가 그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삭발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 PD에게 삭발은 얼마나 큰 결심에 해당될까. ‘올인’ ‘발리에서 생긴 일’ ‘돌아와요 순애씨’의 조연출을 거친 이명우 PD의 트레이드 마크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이다. 지금 유지하고 있는 헤어스타일도 장발이긴 마찬가지다. 그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도 그녀 앞에선 한낱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감수성이 예민해 드라마를 찍으면서도 수 차례 눈물을 흘렸다는 이명우 PD는 ‘불량커플’에서 방송된 장면 중에는 아내 박은경을 생각하면서 만든 것도 많았다고 종방연에서 밝혔다. “시어머니가 신은경 씨에게 가락지를 끼워주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마 그 장면을 찍으면서 아내 생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고 이 PD는 말했다. ‘불량커플’ 같은 착한 드라마를 만든 이명우 PD의 순수한 면을 볼 수 있는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이 PD는 어느 날 인터넷 게시판을 들어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게시판 여기저기서 ‘닥본사’라는 말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라는 인터넷 용어의 의미를 몰랐던 이명우 PD는 어감상 굉장히 안 좋은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큰일났다는 심정에 다른 제작 관계자를 붙잡고 “큰일났어. 우리 드라마를 보고 사람들이 닥본사래”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고 한다. 또한 미스맘이 되기를 원하던 주인공 김당자(신은경 분)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국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은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라고도 했다. 이 PD는 “골드미스도 물론 좋지만 가정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골드미스만큼 좋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신은경 씨는 결국 골드미스를 포기했지만 그와 동시에 최정윤 씨가 골드미스가 되지 않았나. 해피엔딩은 처음부터 계획돼 있었다”고 뒷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100c@osen.co.kr SBS 이명우 PD와 박은경 아나운서 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