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룡 사장, 60년만에 ‘꿈에 본 내고향’간다
OSEN 기자
발행 2007.07.26 09: 19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실향민 김응룡(67)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정지용의 시 의 한 구절처럼 ‘꿈에도 잊지못하던’고향을 찾는다. 1.4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 내려온 이후 무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다음이다. 김응룡 사장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원군 검산면 송양리.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김 사장은 6.25 동족상잔의 와중에 10살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김영식 옹. 1998년 작고)의 손에 이끌려 큰누나(작고)와 함께 3.8선을 넘었다. 그로부터 반백년이 지나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마침내 고향땅을 밟게 됐다. 김 사장은 사단법인 남북나눔공동체(이하 나눔공동체) 운영위원 겸 체육분과위원장이다. 김 사장은 오는 9월 나눔공동체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길에 짬을 내 고향에 가볼 작정이다. 그의 뜻대로 귀향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방문길에 꼭 고향을 찾아보고 싶다는 게 김 사장의 굳은 각오이다. 김 사장이 나눔공동체 총재를 맡고 있는 KBO 신상우 총재의 권유로 이 단체에 참여를 한 것도 남북체육교류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것 외에 북한의 혈육을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야구선수로, 지도자로, 그리고 프로야구단 최고경영자로 이룰 것은 다 이뤘지만 김 사장은 망향의 한을 풀지 못하고 늘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 땅을 밟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꿈도 고향이 배경무대가 될 지경이다. 최근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의 상가에서 만난 김 사장은 “꿈을 꾸면 어릴 적에 뛰어놀던 동네가 나타난다. 동네 개울과 동구밖 나무까지 꿈에 보인다”며 “동네라야 달랑 7가구가 살았던 산골인데, 아직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 그대로 있는 지 모르겠다”며 잠시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김 사장은 2남4녀중 차남이었다. 피난 당시 그의 고향집엔 출산을 앞두고 있던 어머니와 형, 누나, 누이 둘이 남아 있었다. 대개의 이산가족이 그렇듯이 그도 며칠 뒤에는 고향을 다시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 손을 잡고 떠난 그 길이 영영 이별이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그 ‘꿈에 본 내 고향’을 마침내 가게된 김 사장은 요즈음 설레는 가슴을 애써 달래며 그야말로 꿈에 부풀어 있다. 그 동안 김 사장은 남들이 다가는 금강산 조차 일부러 다녀오지 않았다. 먼 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어야할 고향을 보지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리움만 쌓이는 금강산행은 하지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동안 김 사장은 북한의 가족 생사를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시원한 소식을 듣지못했다. 이젠 아마도 다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한다. 김 사장은 몇 년 전 중국 연길쪽의 사람을 통해 고향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가족사진을 들고와 댓가를 요구했을 때 안양에 살고 있던 작은 이모에게 확인을 요청해 본 결과 거짓임이 드러났다. 사기 브로커였던 것이다. 그 일로 김 사장은 아픈 가슴에 더욱 멍이 들었다. 1998년엔 손위 누나(선희. 당시 62세)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모 방송국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한 일도 있지만 생존 사실을 믿기는 어렵다. 북한을 다녀오는 일이 이제는 예삿일처럼 돼 버린 세상이지만 남북간에 흩어져 있는 혈육 상봉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까탈스러운 게 현실이다. 이번에 김 사장이 평양 방문에 즈음해 혈육을 만나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 사장은 이번 방문 길에 야구와 축구 등 각종 스포츠용품을 잔뜩 가져가 북한 체육관계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아울러 남북 야구교류의 가능성도 타진해 볼 참이다. 홍윤표 기자 chuam@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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