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감독들도 혀를 찰 정도다. 지독하게 번트로 상대를 물고 늘어진다. '번트 야구'의 대명사가 된 김재박(53) LG 감독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재박 감독에 이어 현대 사령탑을 맡은 김시진(49) 감독의 얘기다. 투수 출신인 김시진 감독은 전임 감독과 비교해 투수 기용 방식은 다르지만 공격에서는 '번트 공격'을 많이하는 등 비슷한 경향이다. 현대는 올 시즌 현재 희생타가 115개로 단연 1위다. 2위는 108개의 롯데이고 3위가 99개인 김재박 감독의 LG이다. 김시진 감독은 주초 롯데와의 3연전서 2번의 결정적인 스퀴즈 번트 성공으로 3연승을 일구는 등 번트 공격을 애용하고 있다. 전임 감독 때부터 번트 수행능력을 키운 선수들이 작전을 잘 소화한 덕분이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은 전임 감독과는 약간 다른 차원에서 '번트 공격'을 활용하고 있다. 김시진 감독은 '경기 초반부터 번트 공격을 하는 것은 야구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하소연부터 한다. 김 감독은 "우리 팀에는 발빠른 타자가 거의 없다. 경기 초반 득점 찬스에서 번트를 대지 않으면 병살타가 나오기 십상이다. 현재까지 통계상 번트 등으로 초반에 선취점을 올릴 때 승률이 높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김 감독은 테이블 세터진(1, 2번)에 발빠른 타자들이 포진할 수 있거나 하위타선에 공격력이 좋은 선수 한 명만 있어도 번트 공격은 그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불행히도 현대 타선은 그렇지가 못해 어쩔 수 없이 번트 공격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현대는 팀도루 36개로 한화(34개)에 이어 2번째로 적은 '느림보 팀'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현대 야수진에서 가장 발이 빠르다는 베테랑 전준호도 주자가 있을 때 강공을 하면 병살타를 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중심타선에 한 방을 기대하고 '안전한 번트 공격'을 감행할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사실 현대는 병살타 부문에서 현재 3번째로 많은 팀이다. 89개로 KIA(94개), 한화(90개)에 이어 3번째로 병살타가 많다. KIA가 현대보다 4게임을 더 치른 것을 감안하면 거의 막상막하 수준이다. 김시진 감독의 '선취점 승률 및 병살타 통계'를 앞세운 '번트 공격'이 이유있는 항변으로 보여지는 수치들이다. 지난해 현대에서 157개로 한 시즌 최다 희생번트 신기록을 세웠던 전임 김재박 감독은 LG로 옮긴 후 '타자들의 작전소화 능력이 부족해 번트를 많이 못댄다'고 밝히는 것을 보면 김시진 감독의 번트 공격은 잘훈련된 선수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sun@osen.co.kr
